첫 회의 때 만난 한 스태프가 놀랐다. 멀리서 봤던 이재준 연출가는 늘 어수룩한 차림으로 길을 어슬렁거리고, 지질해보일 정도의 지나친 겸손을 가진 ‘그냥’ 연출이었단다. 그러나 작품을 앞에 둔 그는 달랐다. 이리저리 연구하고 깊이 생각해 계산된 이야기만을 꺼내놓는 세심함을 보였다. 연출가 이재준은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의 칠판을 통해 단번에 대학로 블루칩 연출가로 떠올랐고, 연극 ‘끝방’, ‘극적인 하룻밤’, 뮤지컬 ‘톡식히어로’, 뮤지컬 ‘풍월주’ 리딩회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재치를 발산하고 있다.

“연출할 때는 진짜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또 잘 안될 때가 있어요.”, “재치 있다는 평가가 너무 감사하기도 한데, 제가 늙어서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가 있을까요? 벌써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게 느껴지는데....(웃음)”, “요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꼭 사춘기 같죠?” 소탈하면서도 진솔한, 재치 넘치면서도 진지한 그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Q. 연극 ‘극적인 하룻밤’이 벌써 세 번째 시즌이네요. 이번공연은 매진된 회 차도 많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세 번째 공연이지만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관객이 많은 건 정말 좋죠. 다른 이유보다 배우들이 연기하고 공연하기에 좋을 거예요. 좋은 배우들이 매일 나와서 하는데 관객이 없으면 정말 속상하거든요. 예전에 그런 적이 조금 있어요. 그런 점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Q. 초연부터 세 번의 연출을 맡으시면서 구체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 좋아요.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럴 듯한 해결책이 없었던 것들을 매 시즌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무대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정훈과 시후가 6개월 뒤에 다시 만났다는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는데, 선풍기 설정을 통해 보안하기도 했고요. 눈에 안 띄는 것일 수 있지만 사소한 것에 많은 신경을 썼죠. 이번 시즌이 지나면 또 부족한게 느껴지기도 하겠죠? 같은 작품을 여러 번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요.

Q. 연출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와 ‘극적인 하룻밤’이 비슷한 소재예요. 그에 따른 부담이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사실 별로 없었어요. 소재가 비슷하긴 한데 제 색깔을 낼 수 있는 부분이 달랐거든요.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가 관심 받은 이유는 ‘칠판’을 사용했기 때문이었잖아요. 무대, 소품, 연출 방향이 완전 달랐죠.

Q. 연극을 보면서 소재인 ‘원나잇 스탠드’를 즐겁게 풀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일부러 의도하신건가요?
즐겁게 풀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에요. 저는 리얼하게 풀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진 성향 때문에 즐겁게 나온 것 같아요.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고, 또 야한 연극이 되거나 어려운 작품이 되길 바란 것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리얼, 정말, 진짜’ 이런 것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관객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깊이가 없다거나 이런 말을 들으면 조금 속상하긴 해요.

Q. 그런 성격 때문에 작품들에 ‘재치’, ‘재기발랄함’ 이런 평가가 많이 붙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분이 좋죠. 재치 있다, 상상력이 넘친다, 그런 말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재치가 분명 강점이지만 평생을 버틸 수 없겠다, 변해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을 잘 보는 방향으로요.

Q. 연출할 때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고 하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상의, 수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다른말로 하면 배우들에게 기대는거죠(웃음). 공연은 같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창작의 한 단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연출은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고, 누군가 좋은 걸 이야기 하면 거기에 덧붙일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수록 그 작품이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계속 다른 것들이 생기고, 해결되고 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요. 저는 그게 좋아요.

Q. 이번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두 커플 캐스트가 전혀 다른 매력이에요. 연출로서 평가 하신다면요?
재범이랑 태향이는 개인 성향 자체가 달라요. 연기 하는 방법이랑 호흡 자체가 다르죠. 예를 들면 태향이가 재범이 애드립에 재밌는게 많아서 따라하다가 혼란에 빠진 적이 있어요. 재범이는 대사를 중얼중얼 거리는 특징이 있는데 그게 매력이고 어울려요. 사실 위험한건데  그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재범이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울리는 것이 배우들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러면 배우에게 강요하는 것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죠. 

Q. 아, 갑자기 든 생각인데 연기하셔도 되게 잘 하실 것 같아요. (그는 배우들의 성대모사와 연기를 따라 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극단에 있을 때 잠깐 했는데, 이건 아니다 했어요(웃음). 배우들은 정말 엄청난 것 같아요. 

Q. 연출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때마다 방법이나 주제는 다를 수 있지만 독특하다, 재밌다,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항상 듣고 싶어요. 이재준이 해서 다르게 나왔다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후대에 관객들이나 평단에서 받았으면 하는 평가가 있으실 것 같아요.
한 때 심각하게 연극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어요. 이 일을 왜하지 돈도 몇 푼 못 벌고 고생은 진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공연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거든요. 공연이 웃겨서 좋을 수도 있고, 슬퍼서 좋을 수도 있고, 교훈적이어서 좋을 수도 있고, 과거가 생각나서 좋을 수도 있고. 이유와 반응은 다양하지만 공연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마음을 움직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참 행복해요.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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