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은성의 집필실이 있는 ‘담양’과 서울의 접점을 찾아 그를 만난 곳은 남원이다. 낯선 곳이 주는 매력에 작가가 주는 편안함이 더해져 묘한 따뜻함을 전한다. 서울이 주는 분주함을 벗겨 낸 남원의 여유는 작가 김은성과 닮았다.

그는 지난 해 11월부터 시인 김규성이 운영하는 집필실 ‘글을 낳는 집’에서 독하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소풍을 오는 기분으로 남원으로 왔다는 그는 시인 김규성과 그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았다. “여기 혼자 내려와 있으니까 술 생각이 전혀 안나요. 예전엔 고독감도 느꼈지만요. 반면에 담배가 많이 늘어요. 제가 피부가 좋은 건 순전히 지하 600m에서 끌어오는 향긋한 수박 내 나는 물과 사모님의 음식솜씨 덕분이죠.(웃음)”

그는 첫 희곡집 출간준비로 분주하다. 2006년 신춘문예 등단과 함께 올해 나이 35세에 희곡집을 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다. “2007년에 돌아가신 제 스승님 윤영선 작·연출님의 유고희곡집을 낸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됐어요. 아주 인기있는 희곡작가가 아닌 이상 내기가 힘든 상황인데 운이 좋았죠. 제 희곡5편이 실려요. 희곡집 제목도 ‘시동라사’라고 붙고요. 희곡 ‘시동라사’, ‘연변엄마’, ‘찌질이 신파극’, 첫 장편 ‘죽도록죽도록’, ‘순우삼촌’이 실리게 됐어요.”

작가 김은성이 달려온 만큼 그의 작품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당장 내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연극 ‘연변엄마’도 그러하다. 소외된 자의 위태로운 삶으로 평범한 진실을 말하는 작가 김은성, 인간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지각과 통찰력으로 우리의 내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가 박상현, 긴 호흡을 갖춘 작품과 그 호흡을 적절히 그리고 정확히 소화할 수 있는 연출과의 만남은 충분히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연변엄마를 쓸 땐 굉장히 독기를 품고 썼었어요. 우리사회에 대해 화가 나 있는 게 있어요. 걱정도 되고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의 격차가 커져서 대물림되는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하기도 힘들잖아요. 물신화돼 돈에 미쳐 돌아가는 사회에 스며들고 망가져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굉장히 순수한 집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돈 때문에 망가지고 어그러지고 깨져가는 모습. 그건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사회의 양극화 문제, 중산층이 꿈꾸는 부자의 모습이 있고 가난을 대물림하는 아픔,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작품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북아파트의 어느 가정에 입주한 연변엄마를 통해 냉정하게 한국사회를 돌아보고자 한다. 우리현대사를 관통하고자 작품 속에 육군고위장성 출신의 할아버지와 386세대 아버지, 촛불세대를 겪은 아들, 3대가 있는 전씨일가를 넣어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담양 ‘글을 낳는 집’에 내려온 그의 집중력과 필력은 대단하다. “세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년겨울 초에 모두 준비를 했죠. 초고는 나왔고요. ‘목란언니’는 워크숍 형태의 공연을 거쳤죠. 그 작품은 탈북여성을 소재로 한 연변엄마의 연속성를 지니고 있어요. 또 극단 ‘달나라동백꽃’으로 한예종에서 워크숍 과정을 거쳤어요. ‘로풍찬유랑극장’은 ‘쇼팔로비치유랑극단’이 원작이에요. 6.25가 일어나기 하루전날 제 고향 보성을 무대로 펼쳐져요. ‘달나라연속극’은 테라시 윌리엄스 희곡 ‘유리동물원’을 원작으로 서울변두리 옥탑방에 사는 한 가족이야기예요.”

그야말로 볼거리가 풍성한 타 장르는 무지막지한 특수효과와 최첨단 기술장비가 동원돼 장관을 연출해낸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작가 김은성은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에서 잘 해내는 이야기들을 또 할 필요가 있는가를 생각했어요.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작은 틈을 찾으려고 20대부터 부단히 애를 쓰고 찾았어요. 상업적인 이야기 때문에 버려진 이야기들, 이 시대 대중들이 불편해 하는 진실들을 연극을 통해 자유롭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저는 이런 이유로 희곡을 쓰고 연극을 해요.”

동백꽃을 좋아한다는 그는 그것으로 연극을 표현했다. “겨울날 견디고 견뎌서 봄이 올까말까한 때 싹 피었다가 금방 떨어지고, 오랫동안 준비를 하다가 관객과 만나는 시점에 소멸하잖아요. 그것이 ‘연극’인 것 같아요. 발화되는 순간에 소멸해버리는 그게 라이브죠.”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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