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 없는 안무가 안성수는 연습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게다가 연습실에는 스윙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서는 목소리조차 듣기 힘들다. 가장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한 후 조용히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소리 없으나 끊임없이 흐르는 맑은 강물처럼 투명한 여유가 있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드러나는 그의 동작은 민첩하고 예민하다. 빠르고 강하다. “깐깐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죠. 오디션도 거쳤는데 뭐라고 할 필요도 없이 무용수들이 참 잘해요.” 선택기준에 관해서는, “비밀인데 저와 운이 맞아야 해요. 직감이죠.”

“예전에 알던 분들 대부분이 기획팀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세대가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운을 뗀 안무가 안성수는 이번 작품으로 국립발레단과 10년 만에 조우했다. 국립발레단 창작발레 프로젝트 ‘컨버댄스(CONVERDANCE)’에서 ‘스윙타임’을 선보이는 그는 정말로 ‘스윙’처럼 즐기듯 무용수들과 작업하고 있다. 이 작품은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등 세계적인 스포츠 영웅을 위한 오마주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그들을 위한 축제와도 같아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은 거둘 때 국민 모두가 다함께 즐거워하잖아요. 그 느낌이 담겨 있어요.” 그가 원하는 것 역시 “관객들이 즐겁게 관람한 후 기분 좋게 공연장을 나가는 것”이다.

1930년대 베니 굿맨(Benny Goodman)으로 대표되는 재즈음악 장르인 ‘스윙(swing)’은 ‘흔들거리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 이는 재즈 연주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는 신나는 리듬감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안무에 사용된 ‘Sing Sing Sing’은 소위 ‘스윙왕’으로 불리는 베니 굿맨의 대표적 연주다. 미국 대공황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유행했던 ‘스윙’은 당시 사회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음악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쟁 중 휴가를 나와 고향의 아가씨들과 재즈클럽에서 조우해 “모든 것을 잊고 한 번 놀아보자”라는 마음, 그 재회의 기쁨을 빠른 리듬의 춤으로 췄던 것처럼 안성수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과의 만남을 스윙음악의 춤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는 네 쌍의 젊은 남녀들이 재회의 기쁨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될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스윙 리듬에 맞춰 여러 버전의 ‘Sing Sing Sing’도 만날 수 있다. “관객들도 아무쪼록 음악의 자유로운 리듬을 즐기면 좋겠고, 어떤 분석보다는 움직임 그 자체를 즐겨줬으면 좋겠어요.”

“가장 진실하고 정확한 건 대중의 눈”

작업을 하는데 있어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용수다. 어떻게 하면 무용수가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저는 무용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음악은 그 다음이죠. 무용수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히 말해 관객이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관점을 알아야하고 잘 이끌어내야 해요.” 그래서 그는 “무용수들을 신처럼” 모신다. 마음에서부터 존경한다. “무용은 종교이고 무용수는 종교를 이끌어나가는 신이에요. 어떤 부분에서는 친구 같기도 하고 또 딸 같기도 하도.” 그는 한 작품이 끝나면 유독 무용수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안성수와 ‘스윙타임’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영철은 그를 젠틀함의 결정체로 묘사하며 자신의 이상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저력은 무용수예요. 제가 어떤 안무를 만들더라도 관객들을 만족시켜 줄 겁니다. 제가 봐도 너무 잘하니까요.”

그는 지금껏 다양한 일을 해왔다. 신문방송학과를 거쳐 영화와 사진 등의 작업을 하다가 무용으로 접어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안성수는 스스로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져 무용의 길로 들어섰다.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이었다.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요리사라면 또 모를까….” 요리사라니, 영화도 아니고 사진도 아닌 요리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잖아요.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단호하다. 그가 생각하는 무용은 그만큼 고귀하다. “모든 창작과정이 그렇겠지만 무용 역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죠. 무용이라는 거,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또 그만큼 힘들지만 고귀하다고 생각해요.”

이 매력적인 예술작업이 대중과 빨리 친해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안성수는 “무용인들의 잘못”이라고 꼬집는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지젤’이 매진 됐어요. 어렵고 예술적인 작품인데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거죠. 매우 잘하고 있는 거예요. 관객이 떠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요. 그들을 즐겁게 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왜 떠나겠어요. 관객들이 즐겁게 느꼈다면 다시 무대를 찾겠죠. 그러면 대중화가 돼요. 대중의 눈이 가장 정확하고 또 높아요.”

‘컨버댄스(CONVERDANCE)’는 5월 20일과 21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안성수 안무가의 ‘스윙타임’ 외에도 ‘J씨의 사랑이야기(안무 정현옥),’ ‘0 1(안무 박화경)’로 구성돼 있으며 ‘스윙타임’에는 강효형, 이영철, 정혜란, 윤전일, 이향조, 배민순, 신혜진, 박기현 등이 함께한다.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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