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소위 기계치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대, 그녀에게는 전기시스템의 모든 부호가 너무나 어려웠다. 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는 온-오프를 구별조차 못했다. 모든 기계에 패닉상태가 됐다. 그녀는 인터넷 자체도 어렵고 피곤하다. ‘0 1’은 그 기억에서 출발하게 됐다. “사실 단순한 발상이었어요. 기계에 대한 거부반응을 좀 깨보자는 생각이었죠. 부호를 쓰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0과 1이 됐어요. 아주 어린이적인 발상이죠.”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박화경은 2001년 국립발레단과 해설 있는 발레  ‘IF Artist?’를 안무, 아티스트의 사회적 역할과 죽음의 본질을 풍자적으로 다뤄 호평 받은 바 있다. “그 때는 겁 없이 너무 큰 기회에 흥분한 상태로 작업에 참여했었어요. 신나게 제 스타일대로 했죠. 엄청난 일에 참여했다는 느낌과 동시에 여러 가지를 배우는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최태지 단장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4개월 동안 고민하다 한 달 전에 한국에 왔어요. 10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다는 것이 부담되더라고요.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잖아요. 지금 와서 저보다는 어린 세대들과 작업하고 있는데 즐거워요. 예전에 제가 한국에서 알던 분들은 다들 교수님이 되셨더라고요(웃음).” 그녀는 현재 국립발레단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 연습현장에서 안무가 박화경을 만났다.

안무가 박화경은 끄기와 켜기, 두 가지 성질(음과 양)을 가지고 몸으로 시간과 공간속에서의 조합 또는 해체를 시도한다. 여기서 0은 존재하지 않거나 질과 양을 초월한 것, 비어있는 것, 죽음의 공허함과 생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반면 1은 시작을 의미하며 모든 가능성의 종합, 본질,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것, 고립을 나타낸다. 그녀는 솔로(독무)로 시도했던 작품들을 국립발레단 무용수들과 발전시켜보려 한다. ‘0 1’에는 국립발레단 대표무용수 김주원, 송정빈 더불어 정지영, 김윤식, 김경식 등이 참여한다.

멜랑콜리와 지루함이 섞인 일상, 남녀가 각각의 공간에서 몽롱한 시처럼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공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태다. 둘은 어느 사각의 공간을 발견한다. 그 공간은 또 다른 나의 상태일 수도, 우리들의 무덤일 수도, 또는 어떠한 힘의 공간, 블랙홀일 수도 있다. 남녀는 이와 같은 제 3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공간은 두 자아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곳으로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가 맞부딪치는 공간이다. 남녀가 뿔뿔이 흩어져있다 만나서 마치 음과 양, 0과 1이 만나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이나 현상을 만들어간다.

박화경은 “무용은 소설보다 시”라고 말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무용도 시의 세계와 같다. 발레보다 생소한 몸짓에 무용수들은 연습하고 묻고 또 연습하고 묻는다. 같은 동작은 반복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간다. 한국어보다 불어가 편한 안무가 박화경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안무를 소화해내는 무용수들을 보며 “놀랐다”고 말한다. 이어 “한국 사람은 정말 대단해요”라며 웃는다.

국립발레단이 새롭게 시도하는 창작발레 프로젝트 ‘컨버댄스(CONVERDANCE)’는 5월 20일(8시), 21일(3시) 양일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컨버댄스’는 박화경 안무가의 ‘0 1’ 외에도 안무가 정현옥의 ‘J씨의 사랑 이야기’, 안성수의 ‘스윙타임’으로 구성돼 있다.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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