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사)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한 '제1회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Korea International Modern Dance Competition)'의 심사를 위해 영국 램버트 댄스 컴퍼니(Rambert Dance Company)의 예술감독 마크 볼드윈 (Mark Baldwin)이 한국을 찾았다.
램버트 댄스 컴퍼니는 디아길레프 사망 후 해체된 ‘발레 뤼스’의 멤버 마리 램버트가 영국으로 이주, 1926년 ‘램버트 발레 클럽’을 만든 것을 그 시작으로 한다. 고전 레퍼토리에서 탈피, 새로운 형식의 춤으로 발레에 대담한 변화를 시도하며 ‘춤의 대중화’를 선도해오던 ‘램버트 발레 클럽’은 지난 1987년 ‘램버트 댄스 컴퍼니’로 개명하며 현대화를 선언, 독일의 피나바우쉬와 함께 유럽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램버트 댄스 컴퍼니’는 2005년 뉴질랜드 출신의 안무가 마크 볼드윈을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임명했다. 취임 후 첫 공연장소를 지하철역으로 정한 마크 볼드윈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카일리 미노그 등 대중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림은 물론, 케임브리지 대학 심리학과와 함께 제작한 ‘The Child’,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소재로 하여 만든 ‘Constant Speed’ 등을 발표하며 춤소재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영국물리학 학회의 의뢰로 아인슈타인 이론을 춤으로 만든 ‘Constant Speed’는 물리학 학회로부터 “우주와 시간, 움직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표현하는 ‘완벽한 매개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 이름이 낮선 무용가 마크 볼드윈. 그를 만나 춤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유년기를 보낸 피지섬의 민속적 색채에 영향을 받았다는 마크 볼드윈은 언젠가 한국 무용수가 램버트 무용단의 정단원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특별히 유색인 무용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작품을 위해 2년간 물리학자들과 아인슈타인 이론을 연구하고, 매 작품을 위해 신곡을 써야한다는 고집 때문에 힘들게 음악작업에 참여하는 그는 집요하고 완고한 예술가다. 그러나 미술과 무용을 동시에 공부했고, 피지와 런던, 홍콩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를 접한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여행을 즐기는 호기심 많은 소년의 인상이 드러난다. 왜 카일리 미노그의 곡을 썼냐는 질문에 “가끔은 런던의 보수적인 관객을 정신없게 흔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그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멀티 플레이어 마크 볼드윈이 이끄는 램버트 댄스 컴퍼니가 영국 무용계에 어떤 춤역사를 써나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10년 9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한국의 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
- 이번이 첫 한국 방문입니다. 몇 명의 무용수를 본 적은 있지만 한국의 무용을 잘 알지 못해요. 영국 컨템포러리 학교에서 한국 학생을 몇 보았는데 모두 실력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번 방문의 이유가 ‘코리아 국제 현대무용 콩쿠르’를 심사하는 것이니 한국의 무용수와 무용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며칠 머물러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특히 한국 음식이 좋습니다.
콩클 심사는 무엇에 중점을 두나요?
- 이번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대 무용’ 콩클이라는 데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저는 콩클 심사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클래식 댄서를 잘 알아봅니다. 발레 무용수들이 테크닉만 바꾸어 추는 것을 많이 봐왔는데 현대춤의 진정한 멋없이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무용수의 움직임, 특히 토르소의 무게중심이 현대춤답게 이해되었는지, 그동안 봐왔던 것들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개성’이 있는지 찾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개성을 보여주는 ‘아이디어’ 또한 중요합니다.
최근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 작년은 저에게 특별히 좋은 시즌이었습니다. 특히 <코메디 오브 체인지comedy of change >를 발표하여 비평가 상인 ‘크리틱 서클 어워즈Critics' Circle Theatre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올 해에는 ‘올리비에 상Olivier Award’의 ‘Outstanding Achievement in Dance’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작품도 몇 개 있습니다.
예술감독 취임 후 첫 공연을 지하철역에서 했는데 원래 파격을 선호하나요?
- 파격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거리 공연을 좋아할 뿐입니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스폰서가 있을 때 만 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 무용단의 관심은 런던 밖으로 나가 세계 투어를 하는데 있습니다. 램버트 무용단은 1년에 1만 5천 관객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2만 5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램버트 무용학교 밖에서의 교육사업도 한다는 것인가요?
- 그렇습니다. 램버트의 교사들이 영국 각지의 학교에 파견되어 15개의 레퍼토리를 가르치는데, 우리 공연 보다 먼저 우리 춤을 알리기 때문에 무용단이 영국 어디를 가든 이미 우리의 춤, 음악은 물론 주제와 구체적 춤동작 까지 알고 있습니다. 초기 무용단과 비교하면 큰 발전입니다. 우리는 ‘Running and practice branch' 라고 표현 하는데,
램버트의 춤으로 크게 연결될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입니다. 매년 그 범위와 참가 인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램버트 무용단에서 현대춤은 어떤 비중을 갖나요?
- 마리 램버트 여사가 창단한 우리 무용단은 1968년 클래식 발레단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춤의 폭을 넓혀왔는데 현재 마사 그레이엄, 머스 커닝햄 테크닉을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저도 머스 커닝햄 테크닉을 20여 년간 교육해왔습니다. 램버트 무용단에는 9개의 커닝햄 레퍼토리가 있는데 현대춤 테크닉을 잘해야만 출 수 있는 것입니다. 커닝햄 방식은 특히 토르소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무게중심이 발레보다 아래쪽에 있죠. 우리 무용단에서는 발레와 현대춤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그 밖에 요가, 필라테스, 자이로토닉 등을 배우는데, 춤 리서치 결과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야 부상도 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Rambert School의 모든 학생들에게 매일 수업을 권하고 있습니다.
램버트 무용단은 한국 무용수를 뽑을 계획도 있나요?
- 물론 입니다. 우리 무용단 단원의 40%가 유색인종입니다. 무용단의 초기에는 흑인 한두 명 정도 밖에 없었지만 현재 필리핀, 인도, 중국, 쿠바는 물론 아프리카 빈국에서 온 무용수들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감독이 되고나서 더 그렇게 되었습니다. 런던은 인종 면에서 세계적으로 큰 도시입니다. 거리에 나가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우리 무용단의 공연을 보러 올 관객이라고 생각하면 더 다양한 민족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램버트 무용단은 다양한 인종이 서로의 문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안무를 위해 음악적으로 고집하시는 것이 있나요?
- 신작을 위해 늘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려 합니다. 디아길레프와 발레 뤼스 시절 미술가 음악가들이 함께 작업한 것처럼 우리도 램버트 무용단만을 위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춤, 미술, 음악 세 요소 모두 한 작품을 위해 창조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음악샵에서 구한 음악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쓰는 것이라 생각해요. 필요에 따라 이미 존재한 음악을 써야할 때는 새롭게 편곡/연주한 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램버트 무용단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대중가수의 곡도 사용했죠?
- 카일리 미노그의 곡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녀의 음악감독이 우리 공연을 보고 무용수들에게 반해서 몇 곡의 뮤직 비디오 안무를 맡기기도 했어요. 우리 무용단에는 스트라빈스키부터 카일리 미노그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관객의 25%는 어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나이 많은 관객을 정신없게 만들기 위함도 있어요(웃음). 램버트 무용단은 거의 모든 공연에서 3개의 프로그램을 공연하는데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식사 코스처럼 다양함을 위해서 입니다. 춤을 많이 알고 있는 관객과 전혀 모르는 관객 모두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추구 합니다.
1998년 내한 공연에서도 여러 안무가의 작품으로 구성했었지요?
- 우리가 주로 일하는 환경은 런던입니다. 평론가들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곳이죠. 가끔씩 런던은 뉴욕과 같습니다. 런던 사람들이 우리 무용단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런던 밖을 싫어하고, 똑똑하고 수준 높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 안무가의 작품만 여러 개 공연하는 것을 지루하고 피곤하게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한국 관객도 도시적이고 빠르고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나요?
무용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뉴질랜드에서 처음 배웠습니다.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발레 선생님의 수업에 몇 번 참가했는데 부모님이 이사를 자주 하셔서 춤을 오래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대학(University of Auckland)에 진학해서 만난 교수님 중 한 분이 “너는 무용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하지만 대학에서 미술 전공으로 장학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어요. 마침 길 건너에 무용학교가 있어서 오전은 무용을 하고 오후에는 대학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업을 많이 하는 척 하기 위해 일부러 대형 캔버스에만 그리기도 했어요. 계속 미술을 했던 것은 혹시 무용을 그만두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학 재학 중에 춤 출수 있는 몇 사람이 모여서 무용단을 만든 적도 있지만, 졸업 후 로열 뉴질랜드 발레단(Royal New Zealand Ballet)에 입단했습니다. 지금은 과거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되어 좋습니다.
램버트 무용단과의 인연은 어떤 것이었나요?
- 램버트 무용단에서 1983년-1992년까지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그 후 10년 간 춤추지 않고 제 무용단 마크 볼드윈 댄스 컴퍼니(Mark Baldwin Dance Company)의 안무가로 연구,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안무가로 활동하던 중 2005년 램버트 무용단의 감독직을 제안 받아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 태생이라는 것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나요?
- 저는 뉴질랜드 피지Fiji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일랜드와 영국을 오가며 살았어요. 저의 작품은 아이리쉬, 피지, 통가(Tonga)의 문화를 모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램버트 무용단에서 첫 안무작이 1991년 <아일랜드 투 아일랜드>였는데, 피지와 영국이라는 ‘섬과 섬’이 서로 통하는 것을 이야기한 작품이었습니다. 저를 안무가로 발견하게 된 작품이었는데, 폴로네시안 댄스의 동작 특질인 엉덩이 움직임과 몸의 중심을 낮추는 것, 부드러운 연결 등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현재 부모님이 홍콩에 살고게시기 때문에 동양문화를 접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그 점도 작품에 반영되겠지요.
본인만의 안무방식이 있나요?
- 저는 안무에 있어서 즉흥에 관한 저만의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작품은 저와 비디오카메라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요. 대부분 음악이 완성되기 전에 안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춤을 비디오에 기록하면 음악에 대해 더 잘 요구할 수 있고, 작곡가들과 상의하며 많이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제 안무의 동반자는 음악입니다. 오랫동안 비디오촬영을 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왔습니다. 저의 모든 작품이 ‘시’였으면 그리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은 다양한 춤이 있죠. Non-Dance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 런던 공연시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를 내세워야합니다. 무용수들은 슈퍼맨이 되어야 하죠. 그러다 보면 춤을 안 추는 무용단도 생깁니다. 저는 그 중 몇몇 그룹을 좋아도 하고 연극적 단체인 DV8과는 친구 입니다. 우리 레퍼토리 중 커닝햄 작품인
다음 신작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 뉴욕 작곡가 Picker와 4개의 프로덕션이 참여한 작품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램버트 무용단은 영국으로부터 국립극장의 주차장 부지를 제공 받았습니다. 5만 파운드가 넘는 땅인데, 그 곳에 우리 빌딩을 짓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어요. 우리 무용단을 위한 3개의 스튜디오와 아카이브, 테크닉 숍, 사무실, 주차장 등 4층 규모의 건물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무가로써 성장하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춤은 당신 인생에서 무엇 인가요?
- 예술은 세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창조 작업입니다. 그 가운데 춤은 다른 장르에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제가 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마치 영화를 만들듯 모든 요소를 조화시키는 종합예술이죠. 영화 보다 시간 공간 적으로 더욱 생생하게 예술가의 호흡을 보여줄 수 있기에 저는 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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