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푸른 빛이 무대 전체를 강하게 아우른다. 백조들은 우아한 날개짓과 함께 가냘픈 다리를 분주하게 움직이며 호수 위를 유유히 산책한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백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수려한 오데트와 지그프리트가 등장할 때마다 무대는 눈을 뗄 수 없는 환상의 극치에 다다른다. 오데트 김지영의 풍부한 표현력과 완벽에 가까운 동작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 선사한다.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고풍스러운 연기와 조각 같은 몸의 지그프리트 김현웅은 내면의 깊은 탄성을 자아냈다.

2막 1장의 왕국무도회는 찬란한 볼거리로 넘쳐났다. 헝가리, 러시아, 스페인, 나폴리, 폴란드의 생동감 있는 춤은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며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들의 역량도 눈여겨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각국의 색이 그대로 담긴 화려한 춤에 이어 등장한 흑조 오딜의 고혹적, 격정적인 춤은 무도회를 절정에 이르게 했다. 무대 위 흥을 돋우는 광대는 더할 나위없었다. 날렵한 몸놀림과 빠른 회전, 그러면서도 재치 있고 안정적인 동작은 관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단 한 장면도 놓칠 것이 없다.

게다가 이번에도 지난해에 이어 독보적 카리스마를 지닌 국내 최상의 지휘자 구자범이 나섰다.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한 무용수, 러시아 볼쇼이 극장 무대를 그대로 옮겨온 무대와 의상 못지않게 오페라 하우스 전체를 아우를만한 웅장한 연주로 황홀의 경지를 맛보게 했다. 이것이 바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이다.

- 백조과 흑조

‘백조의 호수’에서 단연 빠질 수 없는 관전 포인트는 백조와 흑조의 매력대결이다. 이날, 백조와 흑조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연기했다. 김지영은 작고 여린 육체에서 뻗어 나온 섬세한 몸짓으로 백조의 처연한 모습을 완성도 높게 표현했다. 매력 넘치는 백조가 무대 위에서 백프로 발휘됐다. 유리처럼 깨질 듯 조심스러운 투명함과 사파이어처럼 고귀함이 느껴지는 백조였다. 김지영은 고난이도 동작들을 매끄럽게 소화했으며, 사랑스러운 표정과 연기로 여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후반에 그의 흑조 연기는 객석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물이 올랐다. 매혹적인 눈매와 자신감 넘치는 동작으로 드라마틱한 감동을 선사했다. 왕자 지그프리트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그의 연기에 매혹 당했다.

- 왕자와 악마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악마는 절대적인 존재로 강력하게 무대를 장악했다. 악마를 왕자 본성의 또 다른 일면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에게 선악이 존재하듯,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악마와 왕자의 혼연 일체된 모습을 보여준다. 선과 악, 그 경계에서 고민하는 왕자의 내면세계가 상징적, 극적으로 표현됐다. 악마를 연기한 이영철은 등장과 동시에 폭발할 듯 무대전체를 장악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그와 상응하는 충만한 에너지로 압도했다. 악마 이영철은 왕자 김현웅을 주도하기도 쫓기도 하며, 감정의 줄다리기를 강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이에 왕자 김현웅은 그 자체로 귀족적 아우라를 지니며, 격조 있고 남성미 넘치는 무대로 국내 최고 국립발레단의 대표 발레리노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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