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벌레의 번식력처럼 무자비하고 치명적이다. 폭력의 이 대단한 번식력 때문에 우리는 이곳저곳에 흉터를 남기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특히 피를 나눈 혈연지간 간의 폭력은 절망적인 결과를 낳는다. 가정폭력의 사회적 여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가정폭력으로 상처받은 개인은 사회로 나아가 타인에게 그 폭력을 전이시킨다. 가정 폭력은 가부장적인 문화의 잔재다. 학대의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정신적 피폐, 불완전한 몸뚱이를 가지고 서로 대면해야 하는 한 집의 기운은 그 어떠한 어둠보다 더 음침하고 암울하다.

사랑해 마지못할 가족을 때리는 이유는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그 어떤 증오와 분노가 용서라는 단어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가. 폭력은 피해자의 마음속에 한 마리 거친 짐승을 키우는 일이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아들 동수가 집에 15년 만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폭력이 소재인 만큼 내내 어둡고 무겁게 뒤채는 이 작품은 일상처럼 잔잔한 흐름과 소탈한 대사, 리얼한 소품들로 심한 감정기복의 틈을 제어한다. 슬픔으로 얼룩진 무대 위는 살이 다 보이는 지붕의 앙상한 나무 작대기 마디들로 더욱 휑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어느 시골의 한적한 평범한 집에는 감나무도 있고 평상도 있다. 이 평범한 모든 조건과 같이 하나 걸러 하나 있을법한 익숙한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한 소스가 있다. 바로 가정폭력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집엔 구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아들도 있고 30년 동안 참고 살아온 아내도 있다.

심재찬 연출은 관객들이 스스로 내재 돼 있는 인간의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는 의식의 시간을 갖기 바랐다. 이를 위한 장치로 개성 있는 인물의 등장을 시도했다. 아들 동수가 집에 하나씩 데리고 오는 여자들은 폭력의 희생자이거나 폭력으로 쓰레기 같은 삶에 찌든 동수의 치유 동반자다. 폭력은 폭력으로 다스려 질 수 없다. 이것을 동수에게 거쳐 가는 여자들로 쉽고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심한 매질로 피마를 날을 한시도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세월 앞에 무너졌다. 늙어 병든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해서 복수 아닌 복수를 하지만 석연치 않다. 혈연으로 얽매인 지독한 운명으로 인해 아버지를 온전하게 미워할 수도 없다. 폭력은 사랑에서 비롯되는가, 라는 억지스러운 질문마저 머릿속에 맴돌면 이미 동수 안에 있던 한 마리 포악한 짐승은 무릎을 꿇고 외친다. 폭력으로 폭력을 죽일 수 없다. 다만 더 큰 폭력으로 잠시 잠깐이나마 제압은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을 심도 있게 다룬 이 작품은 극단적인 치유방법을 선택했다. 자기 자신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과 대면하면서 치유 받는 주인공 동수는 그 누구의 모습도 아닌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숨어져 있는 단편이다. 때문에 극을 보는 내내 몰입도는 절정에 이르고 감정의 울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폭력은 눈덩이처럼 쉽게 불어난다. 불어난 눈덩이는 우리를 압사 시킬 수도, 질식사 시킬 수도, 즉사 시킬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 내는 소모다운 감정전과 육체전은 모두 제압돼야 한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그 화를 잠재워주는 성찰의 시간을 주고 우리를 평온의 바다로 잠식시켜준다.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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