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욕망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배우는 이곳에서 배제한다. ‘이 곳’은 한 연극 연습실이다. 정복하는 자, 권력을 쥔 자인 연출은 무대의 진정성을 빌미로 한 일종의 신적 존재로 배우를 작품 안에 옭아매고 그들을 조종한다. 시간이 갈수록 맹목적인 지배아래 치졸해지는 배우들은 이미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졌다. 자아를 상실한 무조건적 복종은 무대라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과 명백한 진실인 현실과의 경계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리얼한 폭력과 불쾌감을 안겨주는 모멸감, 상대를 짓밟는 질타가 난무하는 무대는 실감나는 연기와 연출의 힘으로 현장감을 획득한다. 배우들은 극의 말미로 갈수록 광기가 도사리는 무대 곳곳을 헤집고 인간성을 들춘다. 관객은 은밀한 공간에 갇혔다는 흥미진진한 심리적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연극은 코믹적 웃음을 동반한다. 묘한 조화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격해졌던 모든 해프닝이 연극이었다는 이유로 무마됐다. 피해자는 이 모든 상황에 휘말린 관객뿐이다. 그런데도 관객은 연극 ‘하땅세’로 몰려든다.

- 왜 이 연극이 ‘하땅세’라는 극단의 이름을 걸었을까

좁은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창을 열면서 무대는 현장감을 얻는다. 대학로 풍경이 느껴지는 실제 바깥의 공기와 음향이 필요 없는 실제 소리는 관객들로 폭소를 자아냈다. 이것은 일종의 파격이었다. 무대는 ‘날 것’처럼, 옷을 벗어버린 것처럼, 가상의 현실이 아닌 실재로 다가왔다. 남루한 공간이지만 연극은 장소마저도 연출적인 고려 하에 이뤄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엇이 연기이고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리얼했고,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에서는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그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 본질의 끝에 인간 고뇌의 공포가 있다

극과 현실은 본디 본질은 비슷하나 같을 수는 없다. 극은 누군가의 독자적 시각으로 삶의 어느 한 부분이 확대, 축소된 형태이다. 이것이 관객과 만나면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연극 ‘하땅세’는 연극의 본질에 관해 반문한다. 나아가 인간에 대해 또 한 번 반문한다. 연극이 어디까지 리얼할 수 있는가. 연극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또한 연극은 자유롭길 원하면서도 신적 존재에 구속되길 바라는 인간적 욕구와 안정과 질서 속 불안한 심리 등 아이러닉한 관계를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 본질을 묻는다. 연극은 관객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무대에서 자학되는 거침없는 장면들로 생각은 뒤로 미뤄지며, 뚜렷한 답 없이 끝을 맺는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밀려오는 의문들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돌아간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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