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황금시대의 4대 극작가 중 한명인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까는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19세기 독일 낭만파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으며 괴테는 그를 셰익스피어에 견주어 “셰익스피어가 포도송이라면, 칼데론은 포도즙이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칼데론은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에 비해 낯설다. 세상은 신이 제작하고 연출하는 거대한 연극 무대다. 그 무대에서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는 것으로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연극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이 바로 칼데론의 작품이다. 이외에 우리나라에서 초연 중인 연극 ‘살라메아 시장’이 있다.

국경부근의 작은 마을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후 일촉즉발의 풍전등화다. 살라메아에서 스페인 국왕의 순조로운 포르투갈 왕위 계승을 위해 이동하던 군대가 잠시 머물게 된다. 군대의 알바로 대위가 마을에서 존경받는 부농인 페드로의 딸, 이자벨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납치하고 힘과 폭력으로 취한다. 권력과 계략으로 알바로 대위는 쉽게 사랑을 손에 넣는다. 그는 일그러진 손으로 단 한번 품은 그녀를 가차없이 버린다.

연극 ‘살라메아 시장’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나뉜다. 사건발생 전의 극은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다. 관객을 즐겁게 하는 듯 하더니 알바로 대위의 왜곡된 폭력이 권력과 명예, 정의와 복수로 번져 빠르게 진행된다. 이자벨의 아버지인 페드로는 가해자인 알바로 대위에게 ‘결혼’이라는 협상을 제안하지만 계급과 신분의 차이로 굴욕만 당할 뿐 이자벨의 명예를 세워주진 못한다. 페드로만큼이나 명예를 중시하는 한 남자가 있다. 페드로의 아들이자 이자벨의 오빠인 후안이다. 후안은 아버지처럼 명예를 중시하지만 결과의 선택은 상반된다. 여동생 이자벨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자벨의 비극적 사건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판단해 이자벨을 죽이려든다. 현대 이슬람 국가에서 행해지는 이른바 명예살인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때부터 권력의 무법에 대항해 복수와 법집행의 갈림길에 선 페드로의 모습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 ‘세븐데이즈’를 교차하게 한다.

극에서 돈 로페라는 알바로 대위의 상관이다. 돈 로페라와 페드로는 계급제도 아래의 공적재판에 알바로 대위를 맡기는 것을 놓고 촌철살인의 대사와 방백으로 팽팽하게 대립한다. 관객은 이 대목에서 극의 긴장과 몰입을 느낀다. 페드로는 계급과 신분에 대항해 마을의 시장이라는 공적 권력의 힘을 빌려서 절차상의 순서는 무시하고 차분하게 계획적으로 잔혹하게 빠른 복수를 단행한다.

작품은 쉴 새 없는 대사의 향연과 배우들의 연기로 재미를 더했다. 작품에 나오는 갈등은 몇백 년 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대를 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연극 ‘살라메아 시장’은 우리가 겪는 고민과 갈등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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