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도 격렬한 움직임은 관객의 시선을 앗아가기 충분했다. 이와 더불어 무용수들의 눈빛과 몸짓에는 관객을 이끄는 강력한 에너지가 내재돼 있었다. 이들의 충만한 에너지가 한층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단연 무대 덕분이다. 이승과 저승 그리고 망자의 한이 서려 있는 공간을 실감 나게 표현한 무대는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 냈다. 섶-무용단은 이승에 대한 미련, 한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 보였다.

어둠이 깔리자, 귓전에는 잔잔한 음악이 감돈다. 불이 꺼짐과 동시에 관객의 모든 감각은 무대로 향하고 무용수의 등장을 기다린다. 이런 관객의 기대와 달리 불은 켜지지 않고 무용수도 등장하지 않은 채 1분여가 지났다. 곧 음악이 꺼지더니 돌연 몸을 흔드는 한 남자가 보인다.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는 남자는 생명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검은 옷차림에 창백한 얼굴, 표정없는 낯빛의 그는 흡사 저승사자와 닮아 있다. 남자 뒤로 흰 누더기를 걸친 남자가 손을 뻗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흐물거리는 망자에게는 영혼마저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두 뺨의 온기가 채 식지 않은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라도 하듯 거울에 몸을 비춰본다. 거울에 몸을 비춘 남자는 잡을 수 없는 삶을 잡으려는 듯 몸부림친다. 남자의 한이 서린 몸짓이 무대를 뒤덮으면 무용수들은 일제히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당황하는 관객을 두고 텅 빈 공간만이 남아 있다.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하얀 옷을 입는 여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무기력한 표정의 여인들은 마치 로봇과도 같으며 일렬로 앉아 종이를 둘둘 마는 모습이 기계와 같다.

무대를 장악하는 것은 음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용수는 음악을 느끼며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음악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무용 ‘업경대’는 처음 들려오던 음악을 뒤로 꽤 오랜 시간 정적이 감돈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 무대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 정적이 관객의 감각을 긴장시키고 시선을 집중케 한다. 종이의 구김소리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며 음악을 대신해 무대 위 번진 팽팽한 긴장을 늦춘다.

둘둘 말린 종이는 여인의 머리 위와 무대 앞에서 피어난다. 종이꽃이 피어나자 여인들은 생명을 얻은 것 마냥 무대를 장악한다. 이들의 숨 가쁜 몸놀림이 시작되자 흩날리던 흰 꽃가루가 여인들의 발밑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한창 춤을 추던 무용수가 돌연 객석으로 뛰어든다. 커다란 천을 끌어 무대로 향한 그들 덕에 객석은 온통 하나의 천으로 뒤덮였다. 관람하던 관객은 당황하지만 무용수는 제자리로 돌아가 춤을 추기에 여념 없다. 천이 휩쓸고 가자 무용수의 옷은 발가벗겨지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남은 한을 옷과 함께 벗어 던진다.

한참 만에 등장한 남자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으며 삶의 굴레를 벗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이 뒤로 저승사자와도 같은 이가 등장해 그를 저승으로 인도한다. 삶을 마무리 짓자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무용수가 전원 등장해 피날레를 장식한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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