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앞에서 돌아가는 팽이가 무섭다. 팽이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제 얼굴을 한 톨도 보여주지 않는다.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서도 어린아이의 채찍질 앞에서도 팽이는 거침없다. 팽이는 삶에 홀린 듯 사랑에 홀린 듯 땅에 박힌 심지를 빼지 않는다. 상처입고 속도를 잃고 나서야 팽이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캣츠비’도 마찬가지다. 무얼 위해 그리 돌아왔나. 결국은 ‘캣츠비’도 제자리다. 아플 만큼 아파 남은 것이 없다. 죽을 만큼 원망도 해봤고, 다른 사랑을 품기도 했다. 그래도 페르수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깊은 사랑이다. 잠시 이별을 고했던 사랑은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가 보여주는 네 남녀의 사랑은 시리고 아프지만 행복하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복선을 토대로 반전을 향해 달리며 극이 진행된다. 가볍게 진행되던 극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캣츠비를 버렸던 페르수는 단호하게 떠났어야 했다. 계속해서 캣츠비를 맴돌고 있는 페르수와 그녀를 벗어날 수 없는 그가 극의 중심에 서면서 불편한 공기를 일으킨다. 관객들의 긴장감이 고조화된다. 페르수의 비밀을 간직한 하운드의 절규가 관객들에게 동의되면 긴장감은 이해로 변한다. 극은 정점을 찍고 캣츠비의 사랑은 제자리를 찾아 나간다.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캣츠비와 페르수의 사랑은 아팠다. 그들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던 선과 하운드, 브루독의 사랑도 아팠다. 극의 구성은 철저히 반전을 향한 암시가 있었다. 하운드의 입을 통해 내뱉어졌던 사랑이 복선임을 깨달을 때 관객은 그들의 사랑과 상처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지난 작품들은 이름만큼 위대했다. 원작 강도하 작가의 웹툰은  클릭수가 500만이 넘었고 단행본으로도 판매돼 20만권이 팔렸다. 2007년 초연된 뮤지컬은 1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고, OST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 탄탄한 원작의 힘이다. 2010 화려한 캐스팅으로 돌아온 작품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작품은 캐스팅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극은 더 이상 주인공들의 사랑과 현실의 깊이를 보여주는데 애쓰지 않는다. 제3자인 ‘선’이 부각되면서 메시지의 폭을 넓혔다. 가볍고 더 상큼해지려 했던 시도가 극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주인공 외에 새롭게 부여된 네 명의 멀티맨은 바뀐 분위기를 이끄는 주축이었다. 과장된 연기와 안무는 관객들의 웃음을 충분히 자아냈고 구성을 빽빽이 메워 관객들을 쉴 틈이 없게 했다. 관객과 함께하는 퍼포먼스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관객에게 말을 걸고, 극에 참여 하도록 행동한다. 그들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벽을 허문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관객은 배우의 눈 맞춤에 어깨가 꼿꼿이 선다. 무대 위에 있었던 배우들이 깜짝할 새 눈 앞에 있는 현실은 관객들에게 호기심이다. 관객과의 깜짝 스킨쉽에 내지르는 함성 역시 혐오가 아닌 놀라움이다. 작품은 이들을 통해 극의 분위기를 이끌 뿐 아니라 관객들이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막이 내리고 관객석의 불이 켜지는 순간, 곱씹게 되는 것이 하나가 있다. 아쉬움이다. 등장인물이 늘어나고 분위기가 가벼워지면서 무대는 산만해지고 캐릭터에는 당위성이 사라졌다. 소극장 역사상 최고 스타 마케팅을 내세운 뮤지컬이 코러스가 짙게 깔린 MR로 넘버를 이끌고, 긴장감과 갈등 장면을 불안하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인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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