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환 원장은 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성형외과 교수이자 경주동산병원장,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장이다. 그는 2009년 안국갤러리의 전시회 ‘처방전’에서 갖가지 브론즈를 선보이며 예술적 감성을 잘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얼굴과 머리에 선천성 기형을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모두 그가 직접 수술했던 이들이다. 따라서 작품마다 사연이 있고, 모든 작품이 그에게는 특별하게 기억된다. “성형수술을 받은 환아나 환자들 가운데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수술이 어려워 합병증이 생긴 경우 고생하는 환자들의 경우, 그들을 추억하면서 작품 안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내려고 애씁니다.”

특히 그의 작품 ‘LSH-전두비골이형성증’은 이마뼈와 코뼈가 기형인 환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 “LSH는 작품의 모델이 된 성인 여성 환자의 이니셜이에요. 작품에 수술 전후의 모습을 앞뒤로 배치했죠. 당시 그 환자분은 여러 기형을 교정하기 위해 수차례 수술을 받았고 그 과정이 길고 힘들어서 많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테마는 얼굴에 있지만 얼굴과 연결된 매끄러운 다리의 추상적 매치에도 사연이 있다. “수술을 다 마치고 진찰실에서 훌륭하게 변화된 환자분을 만났어요. 그리고 우연히 다리를 만지게 됐는데 아뿔싸, 의족이었습니다. 주치의인 제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작품에서나마 엉덩이와 예쁜 다리를 만들어줬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경주동산병원에 상설전시 돼있다.
 
또 다른 작품 ‘Treacher-Collins 증후군’은 양쪽 광대뼈가 작아 양쪽 바깥 눈 꼬리가 아래로 쳐진 선천성 기형을 가진 여자 아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아이의 두상 위 어린 양의 머리가 자리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찾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양을 앉고 서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구상하게 됐어요. 잃었다가 찾은 한 어린 양처럼 이 아이가 무척 소중하다는,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 아이를 축복해 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죠.”

그런 그도 젊은 의대교수 시절에는 환자를 연구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환자의 어려움과 고통을 생각하게 돼요. 얼굴기형 환자들은 수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아야 돼 경제적 여건을 포함,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됐어요. 현실에서 환자들에게 주지 못했던 정을 작품 속에나마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그만큼 열심이었던 학생이었다. 선생님께서 미술대학을 권유하실 만큼 재능도 보였다. 하지만 당시 미술가가 된다는 건 생계 때문에 허용되기 어려운 문제였다. 따라서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그리고 그가 의사가 돼서 전공 임상과목을 정할 시 그는 예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성형외과를 선택했다.

“조소(彫塑)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었지만, 의사생활이 너무 바빠 엄두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 2000년 후반기에 안식년을 얻어 여유시간이 생기자 불현 듯 시작할 수 있었죠.” 그는 그 동안 만든 조소작품으로 2007년 4월에는 작품전을 가지기도 했다. 

“미술가 친구들이 있어서 조소를 해보고 싶다고 자문을 구했어요. 친구들은 그냥 시작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추켜세웠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그는 조소에 대한 기초지식이 중요함을 깨닫는 에피소드도 경험하게 된다. “찰흙으로 온 종일 작업했던 첫 작품이 말라서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금 사이를 찰흙으로 메워도 메워도 소용없었죠. 전 유토가 아닌 보통 찰흙으로 작업을 한 경우 비닐봉지로 싸둬야 돼는 기초조차 몰랐던 겁니다.” 이 경험 후 그는 평소 잘 아는 ‘무지개 화방’의 소개로 오용환 선생님을 만나서 도움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겸손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예술에 관한 철학이 있다면 무언지 물어봤다. “저에게는 감히 철학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이죠. 그나마 실기(實技)를 하다 보니 작품에 예술성을 가미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얼굴기형은 일종의 장애와 마찬가진데, 이를 조소 작품화 한다는 것은 환자입장에서 보면 비하나 조롱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다소 어둡고 근심이 서린 표정을 갖고 있다. 이는 얼굴기형 환자들의 슬픔, 아픔, 그리고 고통이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부여된 작가의 마음을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된다면,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며 “얼굴기형 환자들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기환원장은 조소의 표면처리를 배우려 여러 물체의 표면질감과 무늬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또 여느 작가들이 그렇듯 그도 작품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다. “초심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의 고갈에 헤매고 있습니다. 전 작품전의 경험을 통해 기형의 정확한 묘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것은 청동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죠. 때문에 제가 의도하는 묘사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테라코타작품이나 왁스를 이용한 청동작품으로 제작해볼 예정입니다.”

그는 미국유학 시절, 하버드의과대학의 소아병원에 있으며 바쁜 일상에 조소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Boston Common에 즐비한 화랑을 찾아다니면서 조소의 재료가 다양하며 고급적이며, 정교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내에선 아직 이러한 재료 사용은 엄두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에선 시장성이 없는 것이 아마도 큰 이유겠지요. 외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해서도 늘 조각 작품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 사진촬영을 해서 돌아옵니다”라며 “미국에도 Thomas Rhee라는 저처럼 조소를 하시는 분이 계신데, 성형외과적인 면과 조소면에서 모두 저보다 대가입니다. 저와 함께 작품전을 가졌으면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지 못함이 못내 미안하다는 따뜻한 마음의 성형외과 의사 한기환.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도 그 다정함과 따뜻함이 엿보인다. 앞으로 얼굴기형 환자 대상에서 미용성형수술 환자로 작품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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