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바람이 쓰러지던 강가에는

풀뿌리들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슬픔 맨 끝에서 숨가쁘게 결리는 어깨

오십 평생 바람은 어둠이 되어

어둠은 바람이 되어 비틀거렸다

천리를 도망해 온 지하 폐광

살갗 핥는 창백한 불빛과

소름끼치게 목을 조이는 어둠 속에서

바람은 절뚝절뚝 먼지를 토해냈다

다가설수록 부서져 버리는 아픔의 속살들

엿본 속살에 밤새도록 휘청거리는

고장난 선풍기가 열을 내며

고개 꺾이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의 키작은 소망은

삶의 흔들림에 대어들지 못했다

동백꽃이 말없이 이울던 새벽녘

관절 바로 세울 수 없는 아버지

무너져 버렸다

조용히 제 그림자 딛고 일어서려 해도

진눈깨비에 놀라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눕고 마는 달빛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했다

어머니 곁에서 아프게 투명한 하늘

목이 말라 지평선으로 끝모르게 곤두박질하고

귀뚜라미 소리 서러운 가슴에

가냘픈 울음이 되는 강가에 서면

풀피리 소리 머언 하늘 휘감고 돌고

무너진 강둑에 고개 숙인 어린 뿌리들은

하늘이 할퀴고 떠난 상처에

더 짙은 눈물 머금는다

[이효진]

현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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