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왼쪽 한 편에 자리해 있는 한 사람. 어렴풋한 옷의 윤곽이며 얼굴 없는 형상은 성별이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 다만 옷의 차림새나 뒤로 드리워진 희미한 휘장, 아래쪽에 자리해있는 촛불의 미미한 불빛은 그가 평범한 직업을 가진 이는 아닐 것이라는 어렴풋한 추측을 갖게 한다.

그의 손에는 동화 속 마녀가 들여다보고 있을 법한 유리구슬이 놓여있다. 회색으로 비춰진 유리구슬속의 세상에는 아스라한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을 향해 조준된 탱크의 앞모습이 선명하게 자리해있다. 탱크 위에 또렷이 그려진 나치의 표식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살벌한 세계대전의 시기에 유리구슬을 든 채 남의 일처럼 지켜보고 있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표정 없는 그의 얼굴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차분해 보인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라고 씌어있는 문구는 한량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유목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연극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에 점령된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우지체를 찾은 유랑극단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내는 갈등을 그려낸다. 작가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연극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예술이자 현실이며, 인간의 삶이 바로 하나의 연극작품이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연극과 인생, 그리고 인간에게 바치는 헌사, 연극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이달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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