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에 향을 피우는 사내아이에 이어 등장한 남자와 여자. 가족인 듯 정답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들 위로는 한 여인의 영정사진이 걸려있다. 해금의 애잔한 선율은 한없는 그리움을 머금은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눈처럼 흩날리는 살구꽃잎은 찬연한 서글픔을 속절없이 떨군다. 햇살 아래 찾아온 봄도 아랑곳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사내애의 가슴에는 고무신에 들어찬 왕모래처럼 한정 없는 그리움이 알알이 박힌다.

“왜 넌 세상에 나와 가지고 이 성화냐.”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의 요강을 바라보던 사내애는 곰보아주머니의 도시 알 수 없는 말들에 이끌려 솟을대문으로 포목점으로 농기구점으로 휘둘린다. 거문고의 묵직한 음성과 가야금의 낭랑한 음색은 양금의 완급으로 차분히 돌이의 행적을 좇는다. 피똥을 누던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과 가슴팍에 얹은 자신의 손을 홱 뿌리치던 어머니의 등 돌린 모습은 사내애의 머릿속을 내내 맴돈다.

애의 목을 걸고 있는 어머니의 한 팔과 어머니의 젖가슴을 그러안고 잠든 애의 미닫이 속 풍경은 사내애의 머릿속에 맴돌던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해낸다. 알아듣지 못했던 곰보아주머니의 말들은 어느덧 알아들을 대목이 되어 다시금 사내애의 머릿속을 떠돈다. 북과 장구를 비롯한 타악기들의 다급한 장단은 가쁜 한숨을 토해내며 사내애의 성장을 지켜본다.

살구나무가 세 번째 꽃잎을 지울 무렵 은행잎처럼 샛노란 얼굴로 찾아온 어머니는 성긴 머리털에 병자의 걸음걸이로 흐리멍덩한 눈동자를 힘없이 감는다. 까까머리 사내애는 변소를 찾아 나선 어머니를 위해 새 요강 하나를 사들고는 흐뭇한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선다. 주사약병을 사다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사내애의 머릿속은 어머니의 얼굴빛처럼 노랗게 물들어간다. 어머니의 윽박질과 애원은 사내애의 결심을 서서히 굳힌다.

목을 안은 사내애의 손은 더 이상 뿌리쳐지지 않는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어머니의 목을 그러안은 사내애는 파르르 떨리는 어머니의 몸의 멈춰질 때까지 팔에 힘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곡 위로 사내애와 까까머리 사내애의 몸짓이 죽은 어머니의 몸짓과 처음처럼 정답게 어우러진다.

젖가슴을 그러안은 사내아이의 손과 사내아이의 목을 건 어머니의 손이 맞닿게 되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그들의 어긋난 손은 살구꽃잎을 타고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무신에 남겨진 왕모래의 서걱거림은 아련한 선율과 함께 기약 없는 한 줌의 그리움으로 남겨진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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