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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그들의 숙명적 만남, 연극 ‘가을소나타’와 ‘뷰티퀸’, ‘엘리모시너리’ 속에 비춰진 관계의 아이러니

러시아의 전통 목각인형 마뜨료수까. 뚜껑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내미는 이 인형은 각각의 모습을 숨기고 있지만 하나의 큰 원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들의 기원은 바깥의 원형을 따라 거슬러 오르고 오르기를 반복해 마침내 원래의 원형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모녀라는 단어로 순환되는 엄마와 딸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엄마는 자신의 딸을 생산해내고 그 딸은 자신의 딸을 생산해낸다. 이들의 무한변주는 쉼 없이 재생산돼 무수한 마찰과 갈등을 빚어낸다. 연극 ‘가을소나타’의 샬롯은 딸 에바에게 난 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자기가 너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한다. 연극 ‘뷰티퀸’의 매그는 또 어떤가. 그녀는 한때 뷰티퀸이였지만 정작 남자 한 번 제대로 사귀지 못한 딸 모린을 몸종 부리듯 부려먹으며 악담을 퍼부어댄다. 연극 ‘엘리모시너리’의 할머니 도로시아는 딸 아티가 태어나자마자 그녀에게 철자를 읊어주며 사사건건 아티의 삶에 개입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행동들로 인해 그녀들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늘 혼자 남겨져야만 했던 에바는 샬롯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모든 것에 순응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수프 하나 제 손으로 끓여먹으려 하지 않는 매그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모린은 매그를 저주하며 그녀가 죽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도로시아의 가치관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아티는 도로시아의 지배를 이겨내지 못한 채 그녀로부터 멀리 도망친다.


이들의 삐걱대는 관계는 서로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극에 달한다. 에바는 발작 장애를 가진 둘째 딸 엘레나를 대하는 샬롯의 가식적인 모습에 분노를 느끼며 그녀에 대한 증오를 폭로한다. 모린은 자신과 함께 떠나자는 파토의 편지를 몰래 불살라버린 매그에게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내뿜으며 그녀를 살해한다. 아티는 그녀의 딸 에코까지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하는 도로시아에게 진저치리며 둘만 남겨놓은 채 다시금 여행 가방을 꾸린다.

하지만 에바와 모린, 아티는 과연 그녀들의 어머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라며 입을 앙다물었던 그녀들은 그토록 증오했던 어머니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한없이 서툰 에바의 모습은 사랑 받지 못한 상처를 지닌 샬롯과 빼닮았다. 숄을 두른 채로 팔걸이의자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락에 귀 기울이는 모린의 모습은 영락없는 매그였다. 너무도 다른 표현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해왔던 도로시아와 아티는 에코의 존재로 온전한 하나의 뿌리로 새로이 거듭났다.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이들의 관계는 엄마와 딸이라는 혈육이 빚어낸 아이러니다. 타인이 아니기에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말 한 마디라도 엇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엮어주는 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간과하기 쉬운 진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아무도 날 망친 적 없어. 아무도 날 망칠 수 없어. 할머니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야. 난 여자들을 위한 선물이야. 엄마 딸이야. 그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거야. 엄마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로. 엄마가 사랑을 쏟도록 하는 존재가 되기로. 언제나 항상.”

엄마에게 방치돼 자라왔던 에코는 손 내미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엄마에게 불쑥 손을 내민다. 엄마가 사랑을 쏟도록 하는 존재가 되겠다고 말하는 에코의 모습에서 그들은 그냥 함께 살아가는 엄마와 딸임을, 단지 혈육으로 맺어진 조금은 특별한 사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욱 상처 받기 쉽다는 것을, 그렇기에 타인과의 관계보다 조금은 더 자비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킨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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