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스 무용단’, ‘울티마 베즈’, 와 함께 벨기에 웨이브의 3대 무용단으로 꼽히는 ‘쎄드라베 무용단(C.de la B.)’의 창시자이자, 현재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알랑 플라텔이 2007년 그의 최근작 <저녁기도>를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벨기에 현대무용의 큰 이름이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현대 안무가, 알랑 플라텔. 본래 전문치료교사 교육을 받은 알랑 플라텔은 정식 무용교육을 받지 않고 대신 예술가들과의 현장작업을 통해 안무와 연출을 익혔다. 그리고 1984년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작은 단체를 세운 것이 바로 쎄드라베 무용단이다. 이곳에서 만든 <엠마 Emma>(1988)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출/안무작업에 몰두하게 된 그는, 이후 <봉쥬르 마담 Bonjour Madame>(1993), ‘La Tristeza Complice’(1995), <바흐에 관한 무엇 Iets op Bach>(1998) 등의 작품들을 통해 쎄드라베 무용단을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단체로 비상하게 만들었다.

매번 작품에 맞게 무용수들을 새로 선발하는 알랑플라텔은 이번 작품 <저녁기도>를 위해 한국인 무용수 예효승을 영입했다. 예효승의 춤에 매료된 알랑플라텔은 “동양인 무용수를 많이 알고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예측불허의 동작들이 튀어나오는 그의 춤은 나를 정말 놀라게 했다. 다음 신작에도 반드시 그와 함께하고 싶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가 만난 알랑 플라텔은 190센티가 넘는 큰 키에 소매를 걷어 올린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빗지 않은 곱슬머리의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다. (그는 1956년생이다.) 명성에 비해 옷차림뿐 아니라 행동거지, 대화 모두 소박했던 그는 온전히 반나절을 인터뷰에 할애하고도 춤에 대한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약속대로 공연이 끝나고 그를 다시 만났다. 무대 뒤에 서서 알랑 플라텔이 질문을 하고 내가 답을 하며 그의 작품과 무용수들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50여명의 세계적인 무용가들을 만났지만 알랑플라텔과 같은 경우는 없었�. 그와� 만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춤을 배워본 적도 없는 알랑 플라텔이 왜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어있는지 알 것 같다. 30년이 넘도록 공연장을 다니며 선수(?)라 자칭한 필자도 그를 만난 며칠간 그에게 홀려있었으니까. 그는 순박한 태도로 영악하게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을 틈� 사람이었다. 그는 카이저 소제일까?

(다음 글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7년 6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무용단 이름을 ‘쎄드라베’ 즉 벨기에의 현대발레단(Les Ballets Contemporains de la Belgique)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나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로움을 갖는 이름이죠. 첫째는 벨기에 사람들이 불어로 된 무용단이름을 가졌다는 것이고(벨기에와 프랑스의 미묘한 감정을 생각한다면 특별한 일입니다) 둘째는 완전한 아마추어 집단이면서 거창하게 ‘발레단’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1984년 창단 당시 비전문가인 친구들 몇명과 모여서 만든 무용단인데 프로 단체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어요. 이런 거창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지요. 이 무용단을 창단하던 시기의 벨기에는 많은 기회와 가능성에 관대했던 시기였습니다. 긴 이름을 쎄드라베 라고 줄인 것은 특별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무용단을 만든 저조차도 발음하기 힘들어서 였습니다.

<저녁기도 VSPRS>를 통해 한국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사실 그 반대의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 관객이 나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는 예술작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반 동안 나의 작품을 통해 관객과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만 있게 되어도 나는 행복합니다. <저녁기도 VSPRS>를 여러 곳에서 공연하며 관객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경험 했습니다. 이번 한국공연에서도 그런 일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저녁기도>가 초연된 작년 2월부터 이번 한국 공연까지 130 여회의 공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해외공연을 하며 다음 신작은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무용단 운영이 궁금합니다

- 우리 무용단에는 해외 투어를 돕는 어시스턴트가 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공연을 하고 있어요. 신작을 만드는 것과 현재 작품을 공연하는 것에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무용수들 가운데에는 다음 신작에 함께 할 사람도 있지만 이번 공연을 끝으로 헤어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들과 헤어지기 전에 <저녁기도>의 공연을 할 수 있는 한 모두 하고 싶습니다. 벨기에로 돌아가 있는 짬짬이 신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포함한 벨기에 무용가들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것을 느끼나요? 벨기에 웨이브는 일시적 현상일까요?

- 무용계의 사람들이 ‘벨기에 웨이브’ 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제 생각에 이것이 유행이라면 금방 그치겠지만 현재 15년 이상 계속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유행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벨기에의 현대무용이 지금과 같이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 저도 그 점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보고자 고심해봤지만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80년대 이후 벨기에 무용계에는 신진 무용가들이 싸워야할 어떠한 전통도 없었고,(그 말은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기 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실험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없던 자유로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현대무용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벨기에의 4-5개 도시들에서 집중적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이 행해지기 시작했는데, 극장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에서 공연답지 못한 기괴한 형식의 작품들이 공연되곤 했습니다. 공연형식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이 가능했고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벨기에관객의 열망도 있었기에 연극과 함께 무용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계속 되는 것이고요.

벨기에의 지리적 특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 맞습니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교차점에 있다는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어요.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독일의 가운데에 있지요. 한 두 시간만 가면 인근 국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위치입니다. 또 많은 스타일들이 브뤼셀을 지나가기도 하죠. 벨기에는 다양한 스타일에 노출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당신은 심라학과 교육학, 전문치료교사 교육을 받았는데 무용교육을 받은 안무자들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 하나요?

-앞서 나온 애기지만 80년대 벨기에의 예술적 배경 덕분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무용가로 전환할 수 있었어요. 얀 파브르, 얀 라우어스(니드 컴퍼니)도 저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 합니다. 저 스스로를 다른 무용가와 비교하여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무용수들의 말을 빌자면 저의 안무 스타일이 신선하다고들 말합니다. 제가 전문 무용수가 아니다 보니 동작을 보여줄 순 없지만 그 때문에 춤을 기술적인 면에서만 보지 않는 관점이 특별하다고 합니다. 저는 무용수의 몸을 춤동작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 합니다. 때로는 무용수들과 음악가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나는 몰라서 묻는 것이지만...) 그들은 무척 신선하다고 해요. 일상에서 발생하는 동작들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것이 다른 무용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전문 무용수가 아닌 사람들은 무용수로 쓰는 것도 저의 다른 점이겠죠.

동작을 직접 주지 않는 다면 어떤 방법으로 안무를 하시나요?

- 저는 무용수들과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하며 그들의 성격 특성들을 파악하며 작업 합니다. 이번 작품도 5개월이 걸렸어요. 안무 방식에 있어서 저는 피나바우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용수들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하고 그들의 대답을 작업에 씁니다. 그리고 안무를 위해 특별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요. 무용수들에게 완전하게 자유로운 상황을 만들어주어서 그들이 어떠한 평가나 타인의 시각에 개의치 않고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무용수들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안무자와 무용수의 공동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무용수들의 권한은 어디까지 인가요? 그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까?

- 중요한 질문입니다. 안무 과정에서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춤으로 내놓다 보면 이번 작품에 적절치 못한 부분까지도 나오게 되죠. 감정적으로 극단으로 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용수들에게서 나온 것들을 걸러주는 필터입니다. 바로 제가 하는 일이지요. 필터작업은 극단적 이미지 가운데 몇 개는 대화를 통해 좋은 것을 정제하여 무대에 올리게 하고, 적절치 않은 것은 바꾸어 쓰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 버리는 일입니다.

감정적으로 극단까지 가는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무용수들이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가학적이기까지 하던데요

- 무용수들의 동작, 아이디어, 연기 등은 무대 위에 올려 질 때 변호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자신 있게 표현 할 수 있는 것만을 공개해야하고 깨지기 쉬운 것(마음, 인격을 다칠 수 있는 것)은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무용수들의 심리적인 면을 많이 고려합니다. 때로는 무용수 스스로 너무나 개인적인 얘기를 끄집어냈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연기하는 것에 상처 받을 수 있다면 그 부분은 삭제시키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 <저녁기도>에도 집단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 무용수들이 서로 감동을 받고 끝나는 것 까지는 좋지만 몇몇은 현실로 돌아오기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나는 현실과 연기의 균형을 맞추기를 바라고 그렇게 유도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TP드라베 무용단의 인상은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의 작품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영향을 받은 무용가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신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 글쎄요. 제 스스로 말하기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사실 그와 작업을 함께 한 것은 1작품뿐이었습니다. 나 스스로는 그가 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나와 그의 작품을 본 관객들은 그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르카위는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의 작품들도 강한 인상을 보여줍니다. 현재 쎄드라베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무용수 예효승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 한국에 왔다고 좋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제 작품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인간적으로도 나에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의 춤을 처음 보았을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특별한 춤이어서 좋았습니다. 문득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춤인지 궁금하군요. 초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해서 주저함을 보였지만 그는 정말 열심히 했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더 많이 보여주지 못해서 후회 된다” 고……. 춤에 열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다음 작품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현재 한국 현대무용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는 들었지만 현장을 보지 못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벨기에의 무용단/무용가는 경제적으로 자생력을 갖습니까? 쎄드라베 무용단의 경우는 어떤가요?

-무용가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은 벨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의 벨기에 무용가들은 적게나마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한해에 너무나 많은 무용가들이 벨기에로 몰리는 바람에 특별히 더 힘들었습니다. 쎄드라베 무용단은 창단 9년째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정부 지원금을 많이 받는 5개의 큰 무용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4명의 안무자가 4개의 그룹과 작업하는 우리 무용단은 빔 반데키부스 처럼 안무가 1명인 무용단과 같은 액수를 받는 것으로는 그 액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번 <저녁기도> 와 같은 작품은 해외 펀드를 끌어들인 경우입니다. 여럿의 투자자를 두고 공동제작을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인터뷰 때 마다 모든 분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춤이란 당신 인생에 있어서 무엇인가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춤은 나 한사람만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없는 춤은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의 인격, 개성, 심리 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내가 만드는 춤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레퍼토리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안무할 때 그 무용수 고유의 인격, 버릇, 개성 등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서 다른 무용수나 연주자를 통해 원전을 공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작업을 함께 시작한 사람들과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 될 때 까지 함께 하고 싶고, 나에게는 참여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 합니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이런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때는 내가 당신에게 물어 볼 것들이 많을 것 같군요.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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