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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형주의 연극리뷰] 유리 부투소프의 <갈매기> : 상징적 이미지

 

 

체홉의 <갈매기>가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Yuri Butusov)에 의해 예술의 전당의 토월극장에서 올려졌다. 연출은 이 작품을 부조리극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한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만약 그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이 사실주의 작품에서 드러나게 되는 부조리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출의 의도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지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가질 것이다.

- 상징적 이미지
먼저, 무대는 골판지로 된 삼면의 벽이, 마치 추상회화의 액션 페인팅의 그림을 보는 듯, 페인팅되어 있으며, 이 삼면의 벽 위 꼭대기에 검회색 갈매기들이 날개를 편채 앉아 있다. 그리고 무대 정면의 큰 창문의 한 쪽은 비워있으며, 이 창문 뒤로 보이는 시커먼 텅 빈 공간은 마치 뭉크의 그림, <비명>의 주인공의 벌려진 입이 커다랗게 확대된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이미지는 부투소프 연출의 <갈매기>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극의 2막에서 연출은 니나와 트리고린이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사랑에 빠지는 부분에서, 이들의 신발을 벗게 하고, 또한 니나에게 빨간색 양말을 씻게 하면서 그녀 내면의 사랑을 드러낸다. 또한 니나가 트리고린에 대해 가지는 사랑의 감정을 그녀에게 노래하게하면서 그녀의 트레플레프에서 트리고린에게로 전환되어지는 사랑의 변화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또한 이런 변화를 알아차린 트레프레프가 갈매기를 총으로 쏘아죽이면서 자신의 갈매기였던 니나를 자기안에서 상징적으로 죽이는 계기를 삼는다. 뿐만 아니라, 트레플레프가 쏘아 죽인 갈매기가 놓인 쟁반을 들고와 니나에게 주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극적 상황에서 연출은 니나와 트레플레프와의 갈등을 드러내는 극적 상황의 대사를 가볍고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이들 대사를 이화시키면서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그려내는 연출의 의도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극의 3막에서 연출은 트레플레프가 자신의 자살 미수 후 엄마 아르카지나를 폭력적으로 거칠게 대하는 장면, 말하자면, 자신의 엄마의 목을 조이고 엄마의 얼굴에 물을 퍼붓고 머리채를 휘어잡는 모습을 통해 연출은 트레플레프 감정의 절정을 그려내는데, 이는 그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상실감의 폭발로 시종일관 멜랑꼴리한 그의 태도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다.

 

- 부조리화된 희극
이제 우리는 이 작품을 부조리로 풀고자 했던 연출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는데, 연출이 자신의 의도대로 부조리를 이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마 작가 체홉이 ‘희극’이라고 말한 지점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 속에서 트레플레프의 엄마이며 여배우, 아르카지나의 애인인 작가 트리고린의 성공한 모습을 숭배하며 그를 우상화하면서 그에게 사랑을 느끼는 니나 그리고 결국 그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그에게 연연해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부투소프 연출은 극의 마지막에 니나의 얼굴을 기괴하게 화장한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이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또한, 아르카지나 역시 자신의 애인 트리고린을 천재작가로 떠받들고 그를 좋아하는데, 이 부분에서 연출은 아르카지나에게 가발이나 선글라스를 통해 그녀가 허세를 부리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의 트리고린의 선택 역시 이와 같은 맥락하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분들은 아르까지나의 대사들을 통해서 모순적으로 드러나는데, 2막의 시작부분에서 아르까지나는 사교계 부인들이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를 칭찬. 애교. 아첨 등의 방법으로 그를 잡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과 트리고린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극의 3막에서 그녀가 니나에게 향한 트리고린의 맘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트리고린에게 모든 찬사를 퍼붓는다. 마찬가지로 트리고린 역시 이렇게 자신을 떠받드는 아르카지나와의 관계에 대해 만족해하며 니나에 대해 순간적 열정을 느끼지만, 다시 안주할 수 있는 아르카지나에게 돌아가는데. 이러한 그의 성향을 연출은 물적으로 표명화시킨다. 말하자면, 트리고린이 골프채를 들고 들어와 니나와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키스하고 난후, 그가 닭고기와 치즈를 먹는 그의 모습을 통해 니나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단순히 물적 욕망으로 표현한다.
극의 다른 한편엔, 트레플레프의 삼촌인 쏘린의 영지관리인이며 집사인 샤므라예프의 아내 폴리나와 그녀의 딸 마샤가 존재한다. 폴리나는 쏘린의 주치의 의사 도른과 애틋한 사랑을 꿈꾸고 또한 그녀의 딸, 마샤는 트레플레프를 혼자 짝사랑한다. 트레플레프를 혼자 사랑하는 마샤는 자신의 사랑이 불가능함을 알고 괴로워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학교선생인 메드베첸코와 결혼한다. 하지만 마샤는 결혼후에도 여전히 트레플레프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 대해서는 무시하며 경멸하는 태도까지 보이는데, 이러한 태도는 폴리나의 남편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연출은 그녀들의, 특히 마샤를 통해 불가능한 미래를 기다리는 이들의 삶의 부조리함을 연출해낸다. 이런 이들의 모습들은 희극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체홉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며 또한 부투소프 연출에 의해 부조리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극의 4막에서 돌아온 니나가 접시에 들고 들어온 권총은 앞에서 트레플레프가 갈매기를 죽여 접시에 들고 들어왔던 사실과 대비되며, 니나가 그에게 가져다주는 상징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대위의 큰 창을 통해 드러나는, 마치 비명지르고 있는 듯한 시커먼 공간은 결국 그를 집어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자살은 부조리한 상황하에서 이미 예견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연출은 이 작품을 부조리로 풀면서 체홉이 자신의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표명해낸다. 하지만 너무나 직접적으로 풀어버린 부투소프, 그의 <갈매기> 연출은 원작이 가지는 많은 ‘시적’ 부분을 희생시키고 상실해버렸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글 하형주 hyungj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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