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무대? 배우? 조명? 스토리?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배후에는 공연의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리고 이를 실제로 펼쳐 내보이는 숨은 창조자, 연출가가 존재한다. 그에 비해 연출가에 대한 일반관객의 관심도는 적은 편이다. 본 연재는 대학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9인의 인터뷰와 그것을 토대로 한 몇 개의 화두를 통해 관객이 연출가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익숙해지고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고선웅 연출은 극공작소 마방진의 대표이다. 극단 마방진은 ‘마리화나’ ‘강철왕’ ‘삼도봉미스토리’ ‘들소의 달’등 독특한 소재의 작품들로 관객에게 인상 깊은 화두를 제시한다. 고선웅 연출은 끊임없는 고민과 사랑으로 연극적 언어를 찾아가고자한다.

- 연출에 있어 지향하는 바나 주안점이 있으신가요?

자연스러운 것, 자연스럽게 발화된 것이죠. 그리고 재미있어야 되요. 사실 최대한 안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연출가의 역할입니다. 공연을 준비할 때 분위기를 만들고, 지치지 않는 사람, 분위기 파악하는 사람, 시작을 해서 끝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가끔은 선장이라는 개념이라기보다 같이 있는 사람이랄까요. 가끔 너무 말이 많고 짜증나기도 하고 이럴뿐이죠. 기분 좋게 잘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중간에 기분 나쁠 수 있어도 결국에는 기분 좋게 해야죠.

- 연출님에 영향을 준 사람 혹은 공연이 있나요?

2주간의 사무로 시무다 위크샵에서 연극에 대한 모든 것들을 배웠어요.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안목이 없다가 그때의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대학교 시절의 연극반 선배들이나 오태석 선생님의 작품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어요.

-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했어요. 실기가 있어서 관두고, 신방과가 비슷한 것 같아서 갔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학교에서 제일 큰 연극반이 어딥니까’해서 연극반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극작가를 하게 된 건 연출을 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예요. 연출을 하려면 희곡이 있어야 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만약 외국희곡 작품을 하겠다고 그랬을 때 누가 해주겠어요. 뭐든지 물이 흐르듯 살아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돈을 벌어야 되네’ 해서 몇 년 벌고 그걸 까먹으면서 글을 쓴 거죠. 전시회 같은 것도 했었어요. 지금은 배수진을 쳐놓은 상태라 생각이 무지 많죠.

-창조에 있어 영감이나 아이디어� 원천이 있나요?

자기고민으로 시작해요. 나를 들여다보고 거기에 집중해요. 나를 고민하지 않으면 착상이 될 수 없어요. 나를 되묻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자꾸 고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화가 나게 되죠. 그러면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그것을 담론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치유해요. 만약 즐거워하는 일이 있어요. 그러면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이 사랑하는 거죠. 그 인물을 사랑하게 되면 좋은 방법들이 나와요. 사랑하고 집중하게 되면 길이 열리죠. 글을 쓰다 막히면 뚫을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리거나 쳐다보고 있으면 풀리게 되요. 아이디어라는 것은 그렇게 나오죠. 짜내거나 꾀를 써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머리를 써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요령을 피울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아이디어가 좋다’ ‘재기발랄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중요한 건 작품을 접근하는 태도가 건강한 것이에요. 집중하고 몰입하고 사랑하면 되요.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우선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야하죠.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게 시작이 되요.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찾아보죠. 구상하고 생각하다보면 떠오르는 게 있어요.
내가 가령 갈등이 나요 생수를 사러 갔는데, 문을 딱 열고 들어가다가 어떤 한 여자가 레몬에이드를 먹고 가요. 그때의 느낌은 레모네이드가 낳을 것 갖지. 그래서 ‘레모네이드 있어요?’하고 물어봤더니 레모네이드가 없어. 여자를 쫒아가죠 ‘어디서 사셨어요?’ ‘여기서 산게 아니라 이화동에서 산건데’ 말을 좀 걸고 나서 다시 가게에 또 들어가죠. 다시 들어가서 물을 하나 사서 물을 먹어. 근데 그 사람이 물을 마시면서 레몬에이드가 생각나요. 그러면 뭔지 모르지만 갈등을 해소해 주는 것은 레모네이드고 그 여자였고. 처음엔 갈증이었는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요. 이런 식으로 변해할 수 있어요. 그랬을 때 드라마가 되는 거예요.

-연극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연극적 언어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오마이뉴스’같은 매체의 고발로 충분하죠. 그게 훨씬 더 경제적 언어에요.
연극은 훨씬 더 높은 고급한 정서를 심어주는 거죠. 현실을 바라보고 관조, 통찰하게 하거나 현실 속에서 느끼는 것들을 그걸 관객이 배우가 느끼는 것처럼 보고 느껴야 될 것 아닙니까. 제가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어 방향을 제시할 그릇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냉소 같은 것은 할 수 있어요.
늘 답답한 것은 왜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할까. 예를 들어 정치판에서도 사랑을 한다고 하는 건데, 깊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겉으로만 하는 거예요. 어떤 정책을 정할 때 어떤 사람들이 다치고 혜택을 받을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만 바뀌어도 인테리어를 싹 바꾸더라고. 정치인들이 사랑을 갖고 있다 해서 표현을 하고 있는 건데 그게 자기중심적인 거죠. 사랑 이라는 건 역지사지로 타인의 입장에서 눈높이에 맞추는 거야. 그러면 세상이 훨씬 더 좋아지죠.

-연극적 언어란 무엇인가요? 고발의 언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내 생각에 연극적 언어는 전적으로 고발할 때는 소모적이야. 어떤 매체가 소극장 한 달 공연하면 삼천 명이 와요. 고작 그 삼천 명을 바꿀 수 있는 거야. 고발이라고 하는 건 훨씬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어 환경오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사진 한 컷을 보여주는 게 훨씬 더 빠른 것처럼. 기름에 쩔어 있는 새를 보면 충격이죠 환경이 이렇게 되면 안되겠다 난리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근데 연극은 그런 작업들이 아니죠. 그림 한 컷으로 보여줄 수 없는 거죠. 연극이란 것은 인간 정신을 치유하고 삶에 대한 태도, 가치관을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얻어가는 과정이죠. 연극을 보는 사람에게 깊게 작용해서 그 사람에 어떤 변화를 주죠. 한의학 같은 거라 보면 되겠네요. 사람의 뿌리를 건드려서 치료하는 거예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스타일, 이야기 소재, 표현방식들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고.

-연출가가 가져야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있나요?

태도는 예술 지향적이어야 하지만 철저히 거기에 오리엔트되서는 안되죠. 관객의 입장에서 관객이 보고 기분 좋게 돈을 지불한 가치만큼의 시간을 얻어 가면 되죠. 저는 그런 작품을 올리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 만약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이라면 너무 완벽한 근엄함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는 건 애는 쓰고 있다는 거죠.

고선웅 연출이 참여한 연극 ‘오늘 손님 오신다’가 남산 예술센터에서 오는 9월 11일부터 공연될 예정이다. 고선웅 연출을 비롯한 최용훈, 구태환 연출 등 세 연출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2009년 한국 사회와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강민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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