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무대? 배우? 조명? 스토리?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배후에는 공연의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리고 이를 실제로 펼쳐 내보이는 숨은 창조자, 연출가가 존재한다. 그에 비해 연출가에 대한 일반관객의 관심도는 적은 편이다. 본 연재는 대학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10인의 인터뷰와 그것을 토대로 한 몇 개의 화두를 통해 관객이 연출가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익숙해지고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메인사진_설공찬전)

이해제 연출은 극작과 연출을 병행하며 ‘흉가에 볕들어라’, ‘쉐이프’, ‘웃음의 대학’, ‘다리퐁 모단걸’등 흥미로운 소재와 깊은 통찰을 가진 작품들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조선 희대의 빙의담’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설공찬전’이라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고, 지난 8월 10~15臼〈� 자문자격으로 참여했던 청소년 공동 창작 작품 ‘나의 빛나던 날에’가 남산창작센터에서 공연되었다. 또한 이해제 연출은 배우 오달수와 깊은 인연으로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기도 하다.

▶ 연출의 지향점 혹은 주안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일단 드라마예요. 드라마 속에는 사람이 있죠. 사람에 대한 생각들을 하다보면 사람이 겪는 고통, 외로움, 즐거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문제들이 주제가 되죠. 연출가라고 해서 실험적이거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다기보다 이야기속의 인간에 대한 탐구에 관심이 있어요. 가장 원초적인 부분들이죠.”

▶ 작품의 영감 혹은 아이디어의 원천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구요. 만나기도 하구요. 억지로 짜내기도 하구요. ‘다리퐁 모단걸’이란 작품의 경우, 도서관에서 책을 펼쳤더니 여자 전화교환수 사진이 딱 있더라고요. 물론 설명은 몇 줄 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저 시대에 여성들이 프로페셔널하게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모던걸’에 대한 고민 혹은 착상이 시작되었어요. 이어서 이 시대의 풍속적인 부분들과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근대화가 되었던 가로 확대되어 나가는 거죠.”

▶ 희곡이나 공연 등 연출님께 영향을 준 것이 있을까요?

“사실 어떤 공연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인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보이는 것, 스쳐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것에서 훨씬 많이 배워요. 연극행위 자체는 ‘살아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인간사의 내면, 의도, 사랑, 질투, 시기가 있고 뭐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며, 하나씩 하나씩 인간다움에 관한 부분을 배워나가는 것 같아요. 완성되어가는 인간성. 하지만, 저 혼자의 인간성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이상적인 지점들이겠죠.

그러니, 딱히 어디서부터 누구를 숭배하거나 지대한 영향을 받고 따라가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의식에 관한 부분들은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싸우고, 자기를 파괴시키고, 또 완성시키고, 또 파괴시키고, 부정하고, 반성하고, 비판하고, 또 그럼으로써 애정 있게 사회와 삶을 비판하고 인생을 생각하는 김수영의 지점과 모습들이 젊은 시절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 연출가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부에 들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놀고먹으려고 작성을 했었어요. 사실 ‘문예부 하면 놀 수 있겠구나’, 그 생각 때문에 글을 쓰고자 했었는데 제가 연극을 할 줄은 몰랐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처음 워크샵 끝나는 날, 제 의형 오달수씨와 집 앞에 있는 선술집에서 밤새 술 마시면서였어요. ‘저 사람 너무 좋다’라는 생각과 그때 잠깐 맛본 ‘사람끼리 만드는 어떤 것’에 대한 끌림이 있었어요. 술 마시는 것도 늘 의미 있었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이건 딱 놀고먹기 좋겠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지금 따지고 보면 놀고 먹는 게 아니라 괴로워죽겠어요. (웃음)

▶ ‘설공찬전’, ‘다리퐁 모단걸’처럼 과거 혹은 옛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신데, 그 이유가 있나요?

저는 과거를 판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현실 저편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무엇이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판타지란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거나 현실을 뛰어넘으며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도 판타지일 수 있어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 즉 판타지를 재현하는 것이죠.

▶ 그렇다면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한 ‘설공찬전’의 경우, 현대와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당시에 혜화동 1번지에서 연출가들끼리 주제를 잡았던 게 ‘권력’이었거든요. 소재가 정해졌으니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다가 우연찮게 ‘설공찬전’을 만나게 됐었죠. 그런데 당시 제가 가지고 있는 상황도 ‘설공찬전’속의 상황처럼 되게 욱하는 상황이었어요. 사람 사이사이의 힘의 관계들이 이건 아닌 듯 싶은 거 있잖아요. 서로서로 짜고, 힘에 욱신거리고, 아닌 부분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꾹 눌러져 있는 상태였어요. 마침 알게 된 ‘설공찬전’을 통해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귀신의 입을 통해 할 말 안 할 말 다할 수 있겠다, 그것도 유희적으로 재미있게.’ 설공찬전을 잘 분석해보면 권력과 계급을 하나씩 꼬집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때 얘기라지만 지금 공연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늘 그렇듯이 그릇을 찾는 이유는 옛날 그릇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라, 옛날 그릇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의미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죠. 고스란히 현대적으로 옮겨도 무방하지만 빈티지한 맛이 있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인기리에 공연되었던 ‘웃음의 대학’이 새로운 모습으로 앵콜공연에 들어가고, ‘설공찬전’은 내년에 중극장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남산창작센터에서 공연된다. 또한 ‘먼데이 파이브 피엠’이라는 새로운 작품이 준비 중에 있다. 2007년 ‘코끼리와 나’ 이후 잠시 쉬고 있는 극작은 잠시 숙성기간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 하니 조만간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본다.


강민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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