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고 싶으면 연극영화과를, 작가가 되고 싶으면 문예창작과에 들어가는 것을 결심할 수 있다. 오디션을 보거나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연 시장이 커질수록 공연계에 들어가는 문은 커지고 체계화되고 있다. 그런데 전문적인 스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연 스텝 중 무대의상디자이너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방법을 파헤쳐본다. (메인사진_지젤)

▶ 무대 위의 앙상블, 무대의상

무대의상[舞臺衣裳, theatrical costume] 무대예술에서 등장인물의 역할이나 성격을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하기 위하여 연기자가 입는 의상. ‘무대의상’의 사전적 정의이다. 무대 의상이 일반적인 옷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디자이너 강기정은 ‘늘 생각하는 앙상블’이라고 무대의상을 정의한다. 무대의상은 배우를 꾸미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 연출, 무대 디자이너, 관객까지 그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 개인을 위한 패션 디자인과는 달리 작품 속에 녹아내리는 ‘앙상블’과 같은 옷이라는 말이다. 김영지 디자이너 역시 무대의상은 아름다움 이외의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의류는 예쁘고 편한 디자인, 잘 팔리는 유형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공연 의상은 달라요. 작품 분석, 캐릭터 분석, 공연 전체 컬러 분석, 움직임까지 고려해야 하죠. 어려워요. 예쁘면서 편하기가.”

디자이너 조문수는 ‘무대의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미있는 예시로 답한다. “무대의상학과 패션 의상학은 옷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요. 무대의상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카페에서 제가 환자복을 입고 있으면 미쳤다고 다들 쳐다보겠죠. 그런데 배경이 병원이면 그렇지 않으신 분이 이상한 거잖아요. 이렇게 무대 의상은 지시하는 게 많기 때문에 극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죠.” 그녀가 말하는 무대의상은 공연을 통해 생명을 갖는다. 배우가 입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면 무대의상은 그냥 소품일 뿐이다. 그녀는 의상을 입고 ‘어떻게’ 행동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무대 위로 올려요. 그리고 극 중 대사를 하게 하면 그 옷이 바로 무대의상이죠.” 즉 그녀가 말하는 무대의상은 옷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옷을 입고 벗는지’까지 결정되어 있어야 하는 의미틀이다.

(사진_샤우팅)

▶ 당신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의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직 우리나라는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길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지 않다.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 역시 정해진 과정을 밟고 올라온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 조문수, 김영지와 같이 유학중 익힌 실력을 가지고 제작사의 콜을 받거나, 포트폴리오를 제출하여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길은 아니다. 디자이너 김영지는 “외국에 11년 동안 있었어요. 선배나 인맥이 있는 게 아니고 시스템도 다르니까 제 포트폴리오를 보려고 안하시더라고요. 믿을 수 있는지 확신을 못하시니까요”라며 초반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디자이너 진출의 사례로 강기정 디자이너를 들 수 있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공연팀을 도와 의상을 만든 것이 그녀의 시작이었다. 이 모든 일선의 디자이너 들 역시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되는 길’에 대해서는 선뜻 입을 열지 못하며 덕목으로 답을 대체했다.

디자이너들이 꼽는 자질은 의외로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대본 분석 능력, 배우 체형 파악, 패턴 뜨기, 조명과 무대 미술의 이해, 역사적 지식, 창작적 마인드는 기본이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수업 과정 중에 철학, 음악사, 무용사까지 다룬다. 디자이너 강기정은 첫째로 애정을 꼽는다. “성실, 정직, 끈기, 부지런함도 중요하죠. 가장 필요한 건 자기가 만족하고 좋아하는 마음이에요. 힘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배우들만큼 주목 받는 일도 아니거든요.”

▶ 한국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의 과제

디자이너 조문수와 강기정이 이야기하는 한국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의 과제는 교류이다. 조문수 디자이너는 “제가 미국에 가면 활동하기 힘들 거에요. 그쪽은 유니언(조합)이 잘 형성 되어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어요. 전 스텝이 마찬가지죠.” 그녀는 수업을 통한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감각을 깨우치는 게 훨씬 많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의 과제로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꼽았다.

김영지는 한국 무대의상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해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작업 할 때 너무 시간이 없어요. 외국에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있어요. 스텝들이 미팅하고 함께 작품을 보는 기간이 일 년 정도 되니까 작품을 분석하고, 원단을 찾고, 조명과 맞춰 볼 시간이 넉넉한 편이죠. 우리는 연습 동시에 디자인이 들어가요. ‘샤우팅’ 같은 경우는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삼백 벌의 옷을 디자인 해야 했어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힘들다’, 그리고 ‘재미있다.’ 관객들이 눈 여겨 보지 않는 곳에는 이런 스텝들의 노력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백스테이지에 숨은 배우들이 의상으로 말하는 대사를 느껴 보는 것도 공연을 보는 또 하나의 좋은 시각이 될 것이다.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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