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마주하면 소위 말하는 ‘포스’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된다. 사람을 압도하는 강한 눈빛과 곧은 목선, 명료한 발음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진 연둣빛 매니큐어와 팔찌, 밀짚모자에 긴 치마를 보면 수십, 수백 명 속에서 ‘누가 디자이너일까’라고 물어도 곧바로 그녀를 지목할 것 같다. 한국 무대 의상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자이너 조문수다. (메인사진_드림걸즈)

▶ 그녀에게 듣는 무대 의상의 역사

“무대 의상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따로 없어 명동 양장점에 의상을 맡기던 때였어요.” 그런 시절 그녀가 택한 첫 직장은 김자경 오페라단. 음악을 좋아해서 선택한 길이 평생을 가게 했다고 한다. “김자경 선생님은 한국 오페라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셨잖아요. 국내 처음 ‘라 트라비아타’로 무대에 선 분이기도 하고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무대 의상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예전에 스판 소재로 만든 오페라 ‘카르멘’ 의상을 봤어요. 메조소프라노쯤 되면 약간 덩치가 있거든요. 복식호흡을 하는 데 배가 너무 부각되어 보이더라고요.” 1987년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결심한다. 연극 의상을 주로 하는 프랑스를 거쳐 오페라를 좋아하는 그녀가 선택한 곳은 이태리 밀라노였다. 3년간 스칼라 극장에서 무대 의상을 담당하던 때를 회상하는 디자이너 조문수의 눈이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 뮤지컬 ‘드림걸즈’의 의상, 브로드웨이 행 비행기에 오르다

“국내에 돌아온 뒤 뮤지컬로는 1996년도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제 첫 작품이었어요. 그 해 ‘보물섬’, ‘쇼코메디’, ‘빠담빠담빠담’ 등을 했죠. 사실 다 못 기억할 것 같아요.(웃음)”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에도 ‘마이 페어 레이디’, ‘햄릿’, ‘나인’, ‘에비타’, ‘미스 사이공’ 등의 의상을 작업했다. 오페라는 외국에서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닌 한 거의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리골레또’, ’라 트라비아타’, ‘나비 부인, ‘카르멘’, ‘세빌리야의 이발사’등을 세다 보면 손가락이 열 개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다.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을 할 때는 7개 작품 중에서 6개를 제가 맡았어요. 스칼라 극장 시절에 보고 배운 것 덕분에 많이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그녀의 이런 재능은 최근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꽃을 피웠다. 그녀는 뮤지컬 ‘드림걸즈’팀이 한국의 공연 제작 능력을 인정받아 브로드웨이 투어를 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이번 공연한 ‘드림걸즈’는 지금 공연계에서는 볼 수 없는 메커니즘을 가졌어요. 한국에서는 초연인데 이렇게 인정받아서 미국에서도 하고 기쁘죠. 앞으로 어느 나라에서 이 공연을 하든 세계 각국의 ‘드림걸즈’ 의상은 제 손을 거치게 되요.”

(사진_마이페어레이디)

▶ 의상이 이상하면 잠도 못 자고 분해하는 ‘옷 귀신’

의상 디자이너인 그녀의 별명은 다름 아닌 ‘옷 귀신’이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저 오면 ‘떴다’고 해요. 이것저것 보이면 제가 그냥 못 지나가는 성격이라서요.” 느긋하게 일을 끌어안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소위 ‘허접’한 것도 싫단다. 옷이 무대에 나가는 그 직전 순간까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펑크 나거나 욕먹은 의상은 없어요. 라벨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건데 이상한 옷으로 올라가면 잠도 못 잘 정도로 분하거든요.” 무대에서 옷이 보이는 것보다는 작품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 더 기분이 좋다는 그녀는 타고난 열정가다. “동대문시장이 저희 집 같아요. 집에서 자는 시간이 5시간이면 동대문에서 9시간을 돌아다니거든요. 현장 속에 어떠한 원단들이 있고 이것으로 어떤 디자인을 할지 끊임없이 연구하죠. 또 무대의상은 조명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고 안무가 있는 경우에는 더 고려할 점이 많아요. 그래서 항상 연습실에 나와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소통해요.”

무대 의상은 ‘오페라의 유령’과 같이 특정 디자인을 고수하는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라이선스인 경우에도 우리나라 제작팀에서 창조해낸다. 많은 공연이 음악, 대본 등 일부만 수입해 오는 방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일반 관객들이 미처 몰랐던 공연계의 실력자들이 있다. 의상 디저이너 조문수도 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역시 외국 작품은 좋아’라고 할 때 속상하죠.” 그녀는 지금도 ‘역시 우리나라 공연 제작 실력은 뛰어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무대 뒤편에서 옷을 손보고 있다.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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