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7일 오전 10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춤과 비평 2’라는 주제로 ‘한국무용예술학회 제 12차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경희대학교 안병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학술 발표회에서는 ‘춤과 비평’을 주제로 하여 김말복 교수를 비롯하여 프랑스 무용비평가 ‘제랄드 메이언’, 무용평론가 ‘문애령’, 서울종합예술학교의 ‘오선명’ 등 총 4명의 학술 논문으로 이어졌다.
다음은 이 날 발표된 논문 중 프랑스 무용비평가이자 ‘국립현대무용센터(CNDC)’ 각료인 ‘제랄드 메이언’의 논문 ‘비평미학과 자기비평적 경계’를 요약한 내용이다.
Ⅰ. 서론 - 위기를 맞은 무대객체
1995년 제롬 벨은 ‘제롬 벨’이라는 연극을 만든다. 이런 작품의 제목과 작가명 간의 혼동은 무대객체의 정체 확인의 상투적인 양식이 위기에 빠졌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 혼동은 이 객체의 형태와 작가의 분명한 의도를 구분 짓는데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정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모든 일반적인 시선들로 하여금 적잖게 놀라게 할 것이다.
이 연극의 상황과 행위들은 관객들과 대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관찰자로 하여금 자신의 시선의 구성에 대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무대에서 미학적이고 아름다운 신체에 어울리는 윤곽 대신, 지방덩어리를 침착하고 분명하게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변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체의 일부, 여기서는 지방 덩어리를 하나의 자치적인 요소로 간주해, 신체 전체의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물의 직각적인 이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신체를 하나의 구조물, 여러 요소간의 연결, 그리고 문화적 투영을 담고 있는 관계 네트워크의 실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방덩어리는 그와 관련된 것에 대한 감상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 지방덩어리는 하나의 안무적 요소가 된다.
전문 비평가도 관객석에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이 전문 비평가가 관례에서 벗어나는 공연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문학적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지위와 직무가 시선의 특권 행사의 암호화에 의존하는 굳어져 있는 듯한 것을 교육받은 특징이 강할수록 그의 내성에서 시작되는 그의 불안정의 감성이 커져갈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 전문 비평가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Ⅱ. 비평예술가들
관례적인 무용수의 이미지는 언어 이전의 무언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는 몸의 움직임의 명인으로써 체능전문교육을 받아 짧은 거리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또 그 실력에 있어서 주되지 않은 지적인 추구는 시간낭비로 인식되어왔다.
무용수의 실력은 순수하게 신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개념은 기본적으로 영혼과 몸 간의 관계를 아주 오래되고 이중적으로 나타내었고, 감각기능의 기본적인 이해만이 있었다.
이런 옛 개념과 정반대로, 90년대의 새 미학은 안무가들이 그들의 행위를 통해 비평적인 지적 활동을 함으로 인해 서서히 만들어졌다. 그들은 철학적, 과학적, 정치적 그리고 미학적 논쟁에 정통했다. 연극과 회화분야의 뒤를 따라, 안무가들도 그들의 기획을 개념화시키고 이론적인 기준으로 뒷받침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직접 비평적인 작품제작에 종사하는데, 여기서 비평적 제작이란 예술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평가를 말한다.
이로써 안무가들은 지금까지 신문기자식 혹은 학구적인 비평가들만이 차지하던 분야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두 경우는 이 분야에 있어 언론의 불충분함과 학문적 연구의 부족으로 보아 숫자적으로나 이론적 도구로나 굉장히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여태까지 독립적이었던 이 종잡을 수 없는 분야 내에 예술가들의 출연은 예부터 내려오던 관례적인 태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 분야가 비평적인 색깔로 옮겨오면서 생긴 현상이다.
Ⅲ. 정의의 어려움
오늘날까지도 90년대 중반에 새롭게 나타난 안무예술을 확실하게 지칭하는 단어나 말은 없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새 미학이 재 표현 및 재 구성, 새로운 장치의 사용을 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재활용, 대용과 변화, 인용 및 파용의 특성을 볼 수 있다. 문체론학파들이 내놓은 모델이나 아방가르드 측근을 따르지 않는 점으로 보아, 이 분야의 생산성은 점유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임시 연합\'의 개념은 이 분야 예술인들 특유의 집단화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생겼다.
또, 주로 다른 예술분야 또는 이를 뒷받침하는 지적 분야로부터 차용으로 인한 불안전성을 부각시키는 분열된 개념들이 사용된다. 이렇게 수행 무용이나 개념적 무용 혹은 회화 무용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극적 묘사의 파괴풍조라는 타이틀을 선택했다. 이 타이틀의 길이로 보아 이 말이 보편화되어 일상 언어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 새 미학분야의 주 제작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체계적으로 우리가 기대하고 기대되는 연출에 질문을 던지며, 또 시각구조의 비평전략 경험을 바탕으로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대중에 열린 서클에서는 이를 ‘non-danse’라고 한다. 무용의 본질적 정의를 은연중에 회복시키는 동시에 부정적인 논리를 삽입하여 복잡한 글의 해석 보다는 아무런 의문 없이 단지 움직임을 나타내는 한 가지 기준을 사용한 ‘non-danse’라는 표현은 정작 모든 해당 안무가들에 의해서는 만장일치로 거부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어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Ⅳ. 견해의 특이성
이 단계에서는 예외적으로 이 발표가 쓰여진 시점을 좀 더 명확하게 위치하기 위해 나는 1인칭을 사용해야 한다.
나도 기자이고 무용평론가이다. 나는 하나의 작품을 한 번 밖에 보지 않는데 그쳐 매우 긴박한 기한 안에 글을 써야 하는 일로 구성되는 이 업무의 한계를 알고 있다. 단지 여기서 내가 주장하려는 생각들의 대부분이 현상학의 관례 속에 일하는 무용 철학자 ‘미셸 베르나르(Michel Bernard)’의 연구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이 철학적인 생각은 관찰 주제를 관찰해야 하는 형상의 일부로 생각해 그 속에 완전히 포함하는 것이다. ‘휴버트 고다르(Hubert Godard)’의 연구는 지각이론과 춤으로 표현된 움직임의 기능적인 분석에 대한 것이다. 다른 어떤 분야의 교차점에 있는 이 새로운 분야는 무용수의 주관화와 무용수의 예술적 의도의 구상에 참여하는 모든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요소들을 포함해, 신체적 연결과 무용에 포함된 공간 관계에 결합된다. 신체적 방법의 접근도 포함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 분석과 비평 역할에 대한 질문에 관해서는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의 기여를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Ⅴ. 위기의 요인들
기존의 미학은 90년대 중반에 탄생한 새로운 미학의 개념과 대립하여 무용 비평을 특정 짓은 기존의 한계점들을 악화시켰다. 더군다나 이러한 한계점의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시킨다면 더더욱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는 비평 과정의 몇 가지 특정 취약함이 오픈되고 창작적인 활력을 생성해내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작품은 무대에서 소개되는 시간 속에만 포함되는가? 공연 시리즈 전체에 대한 고려는 어떠한가? 그리고 창작 과정의 준비 단계, 공연 사이의 연습, 만약의 경우 하게 될 수정에 관해서는? 이 모든 간계들은 작품의 경계에서 벗어나는가? 더 나아가 작품이 즉석적인 요소들, 작가가 미리 숙고하지 않은 일들에서 벗어나는 변동 사항, 시야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 등을 포함했을 경우는?
지각의 이론에 대해서는, ‘지각하는 것은 항상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불안정하고 근본적으로 역설적인 절차’이며 이는 ‘변화의 무한한 힘, 강도 변동의 끝없는 활력, 즉 여러 단계, 순서나 한계에서 펼쳐지는 본질적인 변화’를 내표한다.
Ⅵ. 춤으로 쓰기
‘이자벨 지노’에 의하면 작품과 관객 사이의 확실한 분리에 대한 생각은 환각일 뿐이다. 작품이 생성해내는 네트워크는 안정적이지 않고 절대 완성되지 않는 다양한 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품은 이 네트워크와의 융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관객은 작품의 공동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관객의 시각이 제작 조건의 일부라는 의미에서는 그는 공동감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관찰이해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의 경험을 받아드림으로써 특별한 경험을 설명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비평영역을 작품의 특성과 작품을 향한 시선의 특성 사이세 위치한다(이자벨 지노). 작품은 작가가 보는 세상을 해석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세상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는 무용수들이 이 해석을 해석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비평 자체도 이 해석들에 대한 해석이며, 이는 비평이 자체적인 세상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고, 이는 무용에 대한 규범 체제, 신념, 지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비평가는 작품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것을 매우 가상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쥬느비에브 뱅상’이 제시하는 대로 무용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무용과 함께 써가는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한 해석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작품은 세상을 설명하는 기호 체계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기도 한 형식 제작이 변하는 장소인 것이다. 작품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작품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Ⅶ. 결론 - 자기 비평적 경계
그렇다면 비평은 지나친 해석의 자유에 개방된 것인가? 그 반대다. 이 행위의 실행은 매번 특별한 작품과 관객의 관계 특성을 명시하는 것이다. 특히 관객의 머릿속 연극의 원동력에 대해 질문하고, 객체화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임무는 완전한 의식 속에서 ‘비평은 한곳에 머물러 있는 참고 코드라기보다는 하나의 제스처이며, 이 제스처는 감정적, 무의식적, 그리고 본능적 요소들과 더불어 인식적, 추론적, 그리고 이론적인 요소들 또한 담고 있다(이자벨 지노)’.
여기서 비평행위 목표를 바꾸는 것이다. 꿈의 주 요소들이 꿈 자체가 아닌 꿈을 꾸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관객에게 있어서 극단적인 자기 비평적 경계의 예술을 펼치는 것이다. 작품과의 접촉에서 오는 풍부화는 성급히 만들어진 허망한 해답보다는 섬세함으로 구성된 질문에 기대된다. 감각 차원을 잊지 않은 대가로 지적인 절차는 다시 매우 까다로워질 것이며, 그와 동시에 권위적인 위치의 관리도 포기하는 것이다. 이로서 각도는 변경된다. 더 이상 춤이 무엇을 의미하는데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화의 대부분이 감각 안에서, 제스처 자체에서 작용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객관적인 비평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비평 작업을 객관화하려 하고, 이 비평 작업의 허구적인 본질을 뚜렷하고 생산적이 되도록 하려하고, 작품 외적의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여, 이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관객의 실행 가능한 작업의 예를 드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은 당연히 전문 관객이 문제를 야기하고, 질문을 제시하고, 이론적인 참고단계에서 구상을 뒷받침하고, 이를 미학적 토론과 연결하는 작업보다 더 흥미롭다.
하지만 결국 보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랄드 메이언(프랑스 무용비평가, 국립현대무용센터(CNDC)각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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