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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무용인의 역할-6

 

Ⅴ. 한민족무용의 통합과 무용단체 및 학술단체의 과제

이질적인 정치, 경제체제하에 있던 서로가 상대방 체제의 사람들에게 행동방식, 사고양식, 생활양식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독일사회의 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주민간의 이해와 융합이 문제가 되면서 통일과정에서 사전적 사후적 조치가 사람간의 통합을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된 바 있다. 사회통합이란 의사소통차원에서 이질적인 두 체제가 하나로 융화하고 통합된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일컫는다(전성우, 1993 상).
부언하면 남북간의 사회통합의 문제는 규범, 가치, 사고체계, 정서, 행동양식의 측면에서 이질성이 줄어들고 동질성이 늘어나는 과정이다(전성우, 1993 중). 통일에 대한 사회 통합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한간에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나 정치적 통합이상으로 사회통합이 중요하며 이를 위한 노력이 별도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전성우, 1993 하). 즉 북한과 함께 할 수 있는 교류제안이 가능한 남한의 프로그램개발과 상호이해의 길잡이로서 무용 및 민속예술을 교류하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박영옥, 2003a). 시인 김지하는 현재 시점에서 남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산물로 일찍이 ‘김치’를 꼽았다. 그래서 그는 김치 맛을 통해서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라는 時空間에서 가장 근접하는 남북한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렵다. 문화적 현상이 단지 외형적으로 유사하다고 그것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무시하면 안 된다. 김치 맛 역시 우리가 변해온 만큼 북한의 그것도 변했음을 먼저 인정해야한다. 이래야만 서로가 50년 동안 각자의 길로 걸어온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인정은 문화적 이해라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한다. 김치 맛이 변한 것보다 더 많이 변한 것이 남북한의 민속예술이다. 단지 흥이 나면 춤을 춘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변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문화란 관념체계는 정치적 경제적 관계에 얽혀서 시간적으로 항상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무용 및 민속예술이 상당한 정도에서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단지 ‘낭만’적인 민족 동질감에 호소하는 것을 통해서 민족통일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남북한의 김치가 지닌 외형상의 유사점에 현혹되지 않고 김치 맛의 차이에 더 주목할 때 무용 및 민속예술의 실질적인 교류사업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국민들에게 남북한이 같이 먹는 김치는 같은 김치이지만 북한동포들이 오늘날 먹고 있는 김치는 우리 것과 맛이 약간 다른 북한식 김치임을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는 북한 측에 우리의 김치 맛이 그네들과 약간 다름을 먼저 밝힌다면 서로의 김치를 나누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 북한이나 모두 갈라서기 전의 김치 맛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이용효, 2001).
1985년 제1차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은 남북이산가족 찾기라는 정치사회분야 교류에 수반된 관계로 분단 이래로 최초인 수십 명의 남북한 공연단이 서로 오가는 사건이었다. 엄청난 정치사회적 사건으로 정부와 국민모두가 매우 긴장한 상태였고 대중적 관심도 매우 높았다. 이 큰 행사에 걸맞게 공연은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공연은 짧은 음악, 무용작품을 나열하여 구성하였고 남북한 무용의 성과와 특성을 2시간 안에 요약하여 핵심적으로 보여 주고자했다. 그러나 공연에 대한 남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는 냉전적 분위기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산물인 한편 서로의 예술관과 취향, 예술전통을 이해하지 못해 오는 거부반응의 측면이 강했다.
85년의 공연물 교류는 여지없이 충돌 한 것이었다. 북한은 남한의 작품을 현대적 미감을 갖지 못한 고리타분하고 조잡한 복고적인 작품이라 평가했고 남한은 북한에 대해 국악기는 서양화 되었고 춤동작도 러시아나 중국풍이 들어와 전통이 심하게 훼손 되었다고 비난했다.
5공화국 당시 남북한 양측은 이런 교류를 본격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1990년에 ‘범민족 통일 음악제’가 윤이상이 매개자로 나서서 성사되었는데 시기적으로 87년 6월 항쟁 후였기 때문에 제한적이나마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분단 상황에 대한 반성과 통일운동의 발전이 이루어진 터였다. 이 공연은 단순한 교환 공연이 아닌 남북한합동공연이었으며 85년 공연에 비해 대중적 호소력을 초점에 두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전문적인 관심에 바탕이 되고 있었다.
북한 측은 이 공연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사실위주의 보도를 하였으며 사물놀이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를 보였다. 남한 측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화해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이 공연은 한반도 안에서는 계승되지 못하였지만 이후 제3국에서는 교류공연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연합뉴스, 2003). 이렇듯 아무런 준비 없이 남북한의 통합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듯이 혼란 없는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다. 신뢰의 분위기조성의 일환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용단체들의 통일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이고, 무용지도자들의 강한 통일의지가 필요하며 무용학회지의 북한 참여 유도이다. 학술발표회를 통하여 서로가 만나고 남북한 춤에 대한 비교, 분석, 비평 등을 통해 이론적으로 서로간의 이질감을 줄여 나가다보면 서로의 춤 맛을 알게 되면서 어느 듯 민족 동질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박영옥, 200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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