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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어린 아이처럼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영혼이 있을까? 아마 그 어딘가 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보석보다도 찬란한 진실의 빛이 숨겨져 있고, 어린아이의 입술엔 옥구슬처럼 영롱한 아름다운 사랑의 음성이 가득 담겨져 있다. 이처럼 어린 아이의 영혼은 그 누군가의 차디찬 마음까지도 단 숨에 녹여버리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한사람, 순수한 영혼의 결정체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 그녀의 순결한 영혼이 어느새 두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버린다. 비록 자신의 몸은 더렵혀지고 망가졌다 하더라도…….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는 단 3명의 배우와 투명한 의자 두 개, 조그만 테이블이 전부이다. 오직 한 줄기 핀 조명만이 닥터 리빙스턴의 가는 길만 비출 뿐 그 어느 것도 필요치 않는다. 하지만 배우 3사람이 열연하는 가장 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연기는 조그만 무대를 어느새 가득 메워 단촐한 무대 세트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만든다. 특히 공연 내내 줄곧 담배만 피워대는 닥터 리빙스턴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암시하는 듯 컴컴한 무대를 온통 뿌옇게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극은 무대와 배우 이 모든 것들을 따로 두지 않고 서서히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처럼 시간의 흐름과 간격을 두어 세밀하게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극 중 아그네스의 정신 감정을 의뢰받은 닥터 리빙스턴은 무대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담배와 함께 극 전체를 훌륭히 이끌어 나간다. 냉철하면서 날카로운 그녀는 딱딱한 목소리로 미리암 원장수녀에게 다가가지만, 아그네스 앞에선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그녀의 그런 이중적인 면모가 극에 여유를 주면서 흐름을 매끄럽게 만든다. 또한 미리암 수녀와 닥터 리빙스턴 간의 불꽃 튀는 대화는 극의 긴장감을 높여 관객들을 단번에 압도하기에 이른다.
반면 아그네스라는 인물은 어렸을때부터 엄마에게 받은 성적학대로 인해 상처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맑은 목소리는 설사 그녀가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까지 부인하고 싶게 만든다. 배우 전미도는 이러한 아그네스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극에 몰입하게 한다. 특히 공연 내내 특별한 음악 없이 사용된 아그네스의 노랫소리는 서정적인 느낌마저 감돌아 작품을 편안하게 이끌어 낸 점이 돋보인다.
“왜? 그녀는 어린 시절 학대와 상처를 받아야했고, 아이를 죽여야 했으며,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져야 했나요? 하나님!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십니까? 도대체 당신은 어떠한 하나님이시 길래, 이렇게도 질서정연한 우주 속에서 자기를 유린당하면서까지 그토록 놀라운 체험을 해야만 하나요? 저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그녀가 축복 받으리라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제게 그녀의 일부분을 남기고 갔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것이 기적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닥터 리빙스턴이 한 말이다.
이 말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무실론자였던 닥터 리빙스턴이 신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기적을 믿게 되는 모습이다. 또한 죄를 짓고 정신병동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 아그네스가 마지막으로 닥터 리빙스턴에게 신의 기적을 전해주고 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아그네스는 바로 ‘신의 아그네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자신의 상처를 비관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살아온 아그네스는 오직 신을 기대할 뿐 다른 건 바라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순진무구함이 보는 관객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다. 이 세상의 기적은 언제나 살아있다.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누군가 이 작품을 통해 순수한 영혼 속에 담겨진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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