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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들만 같아라 -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부산스러울 것 없지만 그들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한 노부부의 사는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연애는 아니지만, 그들 나름으로 알아가는 사랑의 재미가 조곤조곤 흘러가며 세월의 노련미를 느끼게 해준다.

- 소극장 무대를 지켜온 원로배우들의 진가

2인극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아무래도 배우다. 게다가 그것이 소극장 무대라면 배우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결과는 곧, 원로배우들의 승리라 말할 수 있겠다. 배우 사미자가 보여주는 ‘이점순’은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생대로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결국엔 사랑 앞에 약해지는 귀여운 할머니다. 아니, 귀여운 ‘여자’다. 말랑말랑한 목소리와 상대배우와 주고받는 연륜 있는 애드리브는 연기가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연기인 듯한 착각을 준다. 젊은 시절 여자들 좀 울리고 다녔을 ‘박동만’ 역의 배우 이호성 역시 울림통 큰 걸걸한 목소리가 능청스럽게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두 배우들의 연기는 아직도 첫사랑의 풋풋함을 닮은 마냥 늘 신선하고, 뜨겁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품 속 ‘이점순’과 ‘박동만’의 사랑이나, 배우 사미자, 이호성의 연기 열정이나 모두 늘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그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노련한 대사와 무대 연출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어느 것 하나 모나지 않고 그 둘의 사랑을 꼭 닮아있다. 어느 시골집 담장 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트는 소박하지만 성의가 넘친다. 세트의 전환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아기자기한 소품들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자연스러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작품의 시작인 봄에서 여름, 가을, 겨울로 흘러가는 동안 바뀌는 배우들의 의상도 웃음이 푹 터져 나올 정도로 현실적이다. 첫 등장에서 박동만이 입었던 연두색 체크 상의나 각 잡힌 노란바지, 이점순의 구멍 난 덧버선은 그들이 살아온 그간의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박함을 지닌 의상과 세트로 인해 지루할 법도 한 이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은 감칠맛 나는 대사다. 카사노바 박동만과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의 개성을 살린 대사들은 시종일관 유유히 흐르는 어둠 속 수면 위로 이따금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숭어다.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 안에서 유머가 갖는 힘이란 인적 없는 호숫가가, 그리고 이 작품이, 혹은 두 황혼의 사랑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이 생생하고 활기가 넘친다.

 

 

- ‘늙은 부부 이야기’, 그대를 ‘연극계의 돈키호테’로 칭하노라!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 현실적 생명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요소는 거리낌 없이 노인의 성(性)문제를 거론한 점이다. 2002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죽어도 좋아’ 개봉당시 파격적인 노인 성(性)생활의 표현이 많은 논쟁을 낳았던 적이 있었듯 사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성(性)에 대한 얘기는 짐짓 쉽게 거론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것이 비단 노인들의 얘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얘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모두가 입에 올리기 꺼려하는 그 문제는 서로 사랑하기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의 돈키호테는 굴하지 않고 썩어빠진 이 세상을 구하려 노력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담론을 조금은 능글맞지만 부담 없는 방법으로 수면위에 올린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 ‘연극계의 돈키호테’라는 별칭을 지어주어도 큰 비약은 아닐 것 같다.

- “흰 머리가 검은 머리가 될 때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첫 만남부터 시작해 할멈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마지막까지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유유히 흐르되, 그 속은 꽉 찬 사랑이다. 그들이라고 자신들의 사랑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조용하게 지켜가는 그들의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들의 즐거움 때문이다.

어슴푸레한 어둠이 지는 저녁, 미동도 없는 호숫가 위로 샛노란 보름달이 떴다. 사실 손잡고 동네 한 바퀴 산보를 하는 것도 남세스럽고 흉이 될까 걱정하듯 조심스러운 사랑이다. 그러나 그 미동 없는 사랑의 호수 위에 뜬 두 사람은 더없이 밝고 눈부신 보름달의 형상이다. 화려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다. 황혼의 사랑에 푹 빠져 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달빛의 은은함과 꼭 닮아있는 사랑은 존재, 그 이유만으로 큰 교훈이며, 교과서가 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다 못해, 사랑까지 스피디한 것이 최고인 줄 하는 요즘 세대들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들만 같아라!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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