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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리뷰] 여자보다 독한 남자들의 수다, 연극 ‘아트’

 

 

사랑을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듯 우정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여자들의 우정은 자매애로, 남자들의 우정은 의리로 뭉뚱그려지긴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랴.

여기 세 친구가 있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수현, 2년제 공대 교수 규태, 문구도매상 덕수가 그들. 수현은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자신을 은근히 깔보는 듯한 규태가 거슬리고, 규태는 학창 시절 자신을 잘 따르던 수현이 자신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 둘 사이에서 사람 좋은 덕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서서히 쌓여 가던 수현과 규태의 갈등은 수현이 구매한 2억 8천만 원짜리 그림을 규태가 판때기라 부르면서 폭발하게 된다. 그림을 촉매로 잠복해 있던 두 사람의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서로에게 서운했던 과거사가 하나하나 들춰지는데...

연극 ‘아트’는 이렇듯 의리로 포장된 얄팍하고 정치적인 남자들의 현실적인 우정을 다루고 있다.  친구 중에도 유독 편해 밑바닥까지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기 힘들고 잘 다듬어진 모습만 보여주고픈 친구가 있다. 겉으로 드러내진 못하지만 자존심 싸움에 주도권 다툼을 하는 친구가 있고,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조정자 역할을 하는 친구도 있다. 친구들 간의 유치한 경쟁심, 시기심, 열등감... 이러한 우정의 역학 관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트’를 보며 시종일관 피식피식 새나오는 웃음 속에서도 어느 순간 가슴 싸해지는 씁쓸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트’는 2004년 초연 이후 객석 점유율 103%, 총 입장 관객 12만 명을 동원하며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아트의 재미는 무엇보다 대사에 있다. 프랑스 희곡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잘 각색한 ‘아트’는 언어적 유희를 만끽하게 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복잡하게 얘기해봐” 이런 식이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여자들의 수다보다 독한 남자들의 속사포 같은 수다에 관객은 어느덧 무대 위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며 공감하게 된다. 수현에 몰입한 관객은 규태가 얄미울 것이고, 규태에 동조한 관객은 수현이 못마땅할 것이며, 덕수가 자신인양 안쓰러운 관객도 있을 것이다.

제 아무리 탄탄한 대본이 있어도 배우들의 호연이 없다면 김빠진 사이다일 것이다. ‘아트’는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의 경연장이라 할 만큼 무수한 연기파 배우들이 거쳐 간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이번에는 정보석, 이남희, 정원중,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 등 초연 멤버들이 다시 뭉쳐 노련미 넘치는 농익은 무대를 선보인다. 각자의 배역을 정확히 파악하고 열연하는 배우들 덕에 관객은 각 캐릭터의 혈액형까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 쿨한 듯 소심한 수현이 A형,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규태는 B형, 매사 좋은 게 좋은 거란 덕수는 O형이 아닐는지... 화목토, 수금일로 팀을 나누어 캐스팅별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아트’의 전통이다.

극중 수현의 대사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친구 사이를 블랙 코미디로 맛깔나게 표현해낸 연극 ‘아트.’ 관객들은 갈등이 해소 되고 세 친구가 건배하는 순간 자신의 응어리가 풀어진 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생각보다 얍실하지만 쉽게 끊어질 수 없는 끈끈한 남자들의 우정 이야기에 저마다의 친구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 항상 돌봐줘야 한다고”라는 규태의 말이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살아 보니 저절로 유지되는 인간관계는 없더라. 사랑도 우정도 노력이 필요하더라... 마지막으로 매직 블록을 발명한 분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연유가 궁금하신 분은 ‘아트’를 보시라!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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