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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내 우주에 들어오면 위험하다”,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부조리한 현실을 은유의 공간으로 밀어 넣은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가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되었다. 제목부터 예사롭지가 않은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동물의 세계를 빌어서 이 세상의 불구성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 비릿한 심상의 폭로
극본을 맡은 작가 김경주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춘문예에서 당선한 시로 문단에 데뷔를 했다.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라는 작품은 김경주가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라는 동명의 시로 먼저 썼던 것을 바탕으로 희곡 작업을 했기에 일반 연극보다 훨씬 많은 상징들을 내포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출연하는 배우들은 ‘~는 ~이다’로 어떤 단어를 정의하는 대사를 자주 들려주며 관념적인 낱말을 작가의 관점이 담긴 구체적인 사물로 변환시켜 전달했다. 총을 들고 숲의 동물을 뒤쫓는 사냥꾼은 ‘인생은 피 냄새를 킁킁거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알고 보면 인간은 세상에 나온 핏방울 아냐?’라는 혼잣말을 관객들을 향해 내뱉었다. 또한 두 팔 없이 태어난 아들늑대는 ‘우리 몸도 휴지 같아. 영혼을 담고 있는 휴지’라고 말하며 영혼을 싸고 있는 육체를 정의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상징성을 담은 정의들은 듣는 즉시 의미가 관객들에게 바로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기발한 정의들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 철학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심어주었다.

- 으르렁거리며 윽박지르는 모성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과연 고운 눈길로만 바라 볼 수 있을까? 평등사회라 불리는 이 사회에도 분명 계급은 나뉘어 있고 엄격한 서열이 존재한다. 직장이나 군대 같은 대형 집단에서는 서열에 따른 수직적인 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인간적인 유대가 중요시되는 소그룹이나 가정에서는 특징이 미약하게 나타난다. 특히나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요새 역할을 하는 가정은 구성원간의 끈적끈적한 애정을 토양으로 그 위에 세운 집이기에 서로간의 마찰이나 충돌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에 등장하는 가정은 서로 간에 정이 넘치는 화목한 울타리가 아니라 억압과 폭력이 있는 또 다른 집단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불구의 아들에게 부정한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먹이를 구해 올 것을 요구하는 어미 늑대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을 못 보면서 여러 마리의 어린 새끼들을 돌봐야 하는 어미의 딱한 사정을 관객들이 알 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팔이 없는 아들에게 자해공갈을 해서 돈을 벌어오라고 윽박지르는 행동은 관객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똥구멍이 말라붙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는 모성도 얼어붙는 것일까? 자식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삶을 연명하려는 어미늑대의 추악한 행태는 우리로 하여금 낯을 붉히게 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하였다.

- 덫
난센스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한다. ‘덫’이란 무엇인가? ‘덫’을 잡기 힘든 짐승을 포획하기 위해 놓는 장치라는 사전적인 의미로 정의하지 말고 최대한 주관적인 명제로 만들어 보길 바란다. 이 작품은 사냥꾼이라는 화자를 통해서 ‘덫’은 크기가 맞지 않으면 풀어버리는 공식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꽤나 의미심장한 해석으로 다가 온다. 수학이나 물리에서 쓰이는 용어인 공식을 ‘덫’에 비유하다니 범상치 않은 발상이다. 또 사냥꾼은 인생에는 공식이 필요하다면서 공식이 없는 삶은 불안하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풀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사는 것이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견고하게 구축된 생태 피라미드도 각 단계에 해당하는 생물에 입맛에 맞는 먹이가 공급되지 못하면 균형을 잃고 서랍이 듬성듬성 빠진 수납장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다. 어떠한 거래이든지 욕망하는 수요와 욕망을 채워주는 공급의 조건이 맞아떨어져야지 성사되는 법이다. 그 공식은 동물의 몸 크기가 아귀에 맞지 않으면 동물을 붙잡을 수 없는 덫과 덫을 건드리는 동물의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조명의 활약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의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작은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늑대들이 사는 움막이, 우측에는 낮은 계단과 연결되어 있는 사냥꾼의 자리가 있었다. 늑대들이 기거하는 움막은 마치 검붉게 굳은 피를 암시하는 듯 불그죽죽한 조명 아래 비틀어진 나무기둥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나무 기둥 사이로 볼품없는 박제 동물들이 시체의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며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극의 도입에서는 오른쪽 공간의 조명이 완전히 차단되어 마치 없는 공간처럼 관객들의 눈을 감쪽같이 속였다. 하지만 사냥꾼이 세상을 향해 적의를 품고 독백을 하는 장면이나 아버지를 실수로 죽인 아들늑대를 잡아가기 위해 나타나는 경찰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명이 잠깐 환하게 빛나면서 관객들의 시야에 공간이 잡혔다. 또한 관객들의 눈을 휘둥그레 해지게 만들었던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조명의 활약이 굉장히 돋보였다. 배우들이 퇴장한 암흑 속 흐릿한 빛 아래 수십 마리의 박제 동물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친 욕설과 동물의 울음소리가 난무했던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문명화된 사회 속에 상실된 인간의 본능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의인화된 늑대인간들을 통해 그들을 구속하는 여러 가지 갈등구조와 세상 밑바닥에 엉겨 붙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합리를 실존적으로 표출해 내었다. 또한 이 작품은 뚜렷한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진행되어 한 편의 시처럼 유동성 있게 ‘메타포’를 전달해 주었다. 실험성 짙은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제작한 ‘극단 바람풀’이 앞으로 또 어떤 창의적인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을지 주목해 보자.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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