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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요하다. 붉고 푸른 기운이 무대를 잠식한 가운데 신비로운 국악 선율이 흐른다. 무대의 양 끝에 도열해 앉은 인물들은 자신의 입과 악기를 빌어 자신만의 음률을 더한다. 제의의 시작이다. 무대를 향해 세로로 길게 파인 공간에 촛불을 띄운다. 물에 반사된 조명과 촛불이 흔들린다. 인도 겐지스강에서 볼 수 있었던 뿌자(Puja)와 닮았다. 홀려 버린다. 제 19회 국제 실험 연극제 최우수 연출상에 값하는 임형택 연출의 솜씨는 매혹적이다. 중앙의 붉은색 원형 구조물을 기점으로 좌우로 명확한 대칭을 이루는 무대 디자인은 외면과 내면이 분리된 메데아를 은유하며 미학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삼베로 만든 넉넉한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슬그머니 등장한다. 민족 고유의 친근한 선율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극의 외연을 탄탄히 한다. 그 선율에 맞춰 배우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태초의 이상적 공간을 형상화한다. 선한 것만이 존재하는 세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언어는 부재한다. 언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사건들은 이 원형적 공간에서 존재할 수 없다. 오직 노래와 몸짓만으로 소통하는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꺼비집’,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고유의 놀이들을 연극적으로 차용하여 표현한다.
서양 고전의 동양적 해석과 표현은 연극 ‘두 메데아’의 중요 모티프이다. 위에서 밝힌 극의 도입부는 앞으로의 동양적 미와 덕의 구현에 탄탄한 초석이 된다. 사랑을 배신해 버린 이아손을 향한 메데아의 복수극으로 단순화 될 수 있었던 유리피데스의 비극에 담긴 메데아의 처절함과 증오는 증가시키는 대신 ‘한(恨)’ 이라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전통 굿의 형식을 빌어 보다 풍부한 의미를 드러낸다. 한의 정서는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마음 깊이 슬퍼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허물을 탓하고 긍정적인 해결을 도모하기 위한 ‘뉘우침과 후회’라는 발전적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무형적 가치를 형상화 하는 것이 전통 굿이다. 창자가 끊어질 듯이 사랑의 배신에 오열하며 왕과 공주를 죽이고 자신의 두 아이까지 산산이 찢어 죽이는 메데아의 절정에 이르는 광기를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연극 ‘두 메데아’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우리의 전통 굿의 형태와 맞닿아 있다. 제사상을 차리고 아이 모양의 종이를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내는 행위와 삼도천을 건너 저승으로 간다는 의식 하에 이루어지는 장송곡은 남은 자와 떠나간 자의 한을 동시에 위로해 준다.
한판 굿이 끝나간다. 창(唱)소리는 희미해져가고 만연했던 국악 선율도 먼 곳에서 들리는 노랫가락처럼 잠잠해진다. 정갈했던 무대는 살인과 광기의 흔적들로 점철되어 있다.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태초의 공간에서 거부당한 메데아는 그녀의 분신과 함께 평안한 표정으로 다시 그녀가 소속되었던 세계로 회귀한 느낌이다. 삶에 초탈한 듯 처진 몸짓으로 정지해 있는 배우들을 뒤로 하고 어둠이 깔린다. 형형한 빛을 발했던 초들이 하나 둘씩 꺼지며 70분간의 관객들을 위한 제의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동서양 고전의 만남은 이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비록 유리피데스의 그리스 고전을 각색했기에 스토리상 진부함을 차치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그러한 통속적인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고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호연과 빼어난 연출력이 빚어낸 형식미에 있다. 이것은 우리 전통이 가진 예술적 가치와 다름 아니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우리나라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이정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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