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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이해를 못하지? 그가 외롭다는 걸, 연극 ‘염소 또는 실비아는 누구인가?’

 

 

무대는 세련된 주택의 거실과 서재로 꾸며져 있었다. 원목바닥과 새하얀 벽, 정원으로 이어지는 큰 문이 한층 여유롭고 넉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곳에서 꽃꽂이를 하는 스티비의 모습이 썩 잘 어울린다. 첫 장면 만으로도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이 보여 진다. 어쩐지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마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틴은 이러한 가정의 평화를 단숨에 흔들어놓는다. 건축가로서도 성공했고, 아내 스티비와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가 ‘염소와 사랑에 빠졌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터트린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연극은 마틴의 내연녀(?) 염소 또는 실비아를 추적하지 않는다. 마틴은 스스로 고백한다. 이 작품은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황당한 사건 앞에서 마틴과 아내 스티비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나가는지 주목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내 스티비. 그녀의 대처는 정공법이다. 침착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대화는 갈등의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니던가. 두 사람 모두 진지하게 대화를 해나가지만, 갈등의 간격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틴은 대화의 문맥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연신 엉뚱한 질문을 해댄다. 이러한 점이 연극의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로 작용하지만, 마틴이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것, 소통에 어려움을 지녔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내준다.

두 사람이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까닭은, 그들의 갈등이 서로 다른 지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남편 마틴은 염소인 실비아를 설명하며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내 스티비에게 남편의 사랑 따윈 안중에도 없다. 남편은 완벽했던 가정생활을 파괴했고, 자신의 완벽한 사랑에 상처를 냈으며, 자신의 삶과 사랑을 부끄럽게 만든 것 자체에 분노하고 있다.

게이인 아들 빌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갖고 있던 존경스런 아버지상(像),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망쳐놓았기 때문에 마틴을 비난한다. 스티비와 빌리는 연신 자신의 ‘이상적인 것’을 읊어댄다. 꿈꾸던 가정, 완벽한 사랑, 행복. 이 모든 것이 ‘이상한’ 마틴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과 이상한 것 사이에서 이들은 갈등한다. 과연 이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정상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 내가 외롭다는 걸” 마틴의 말은 이상(理想)과 이상(異常) 사이에서 공허하게 맴돌 뿐이다.

촘촘해지는 갈등과 치솟는 분노는 과격하게 표현된다. 급기야 스티비는 주변의 물건들을 던지고 부수는 등 무너져가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면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한쪽이 꺼지고, 벽면이 무너지는 등, 마틴이 속해있는 세계가 파괴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그 충격을 가시화시킨다. 그들은 소통불가의 답답함을 연신 고함으로 대신한다. 깊어져가는 갈등은, 객석에서 느낄 수 있을 만큼이나 생생하게 표현됐지만, 두 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치솟아 있는 긴장상태를 지켜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스티비는 남편의 마음을 훔쳐간 그녀, 실비아를 죽이기에 이른다. 염소의 죽음은 두 사람의 소통불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마틴 역시 자신의 전부를 파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렇게 참혹한 광경을 야기한 것은 무엇일까. 외롭다는 말, 슬프다는 말, 서로가 그 한마디를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닐까. 염소 또는 실비아는 더 이상 없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 둘은 끝끝내 화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수영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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