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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의 리얼 러브 스토리, 뮤지컬 ‘돈 주앙’

 

붉은 장미, 날카로운 진검, 검게 드리운 밤의 그림자와 이를 압도하는 푸른 색 달빛. 그 무엇도 돈 주앙의 매력에 미치지 못한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점점 빠져드는 ‘원조 나쁜 남자’ 돈 주앙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06년 오리지널 팀 초연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래 올해 초 한국어판 초연공연으로 큰 관심을 얻었던 바로 그 작품이다.

- 플라멩코와 뮤지컬의 만남, 1석 2조의 볼거리

여느 뮤지컬과 다른 ‘돈 주앙’만의 묘미는 바로 스페인 춤, 플라멩코를 같은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6년 내한공연 당시 관객을 열광하게 했던 오리지널 플라멩코 팀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공연 초반부터 커튼콜까지 14인의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매우 강렬하다. 그 중에서도 돈 주앙을 유혹하는 집시 여인으로 분한 마리아 로페즈는 관능미 넘치면서도 절도 있는 춤을 선보였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며 유연하게 허리를 뒤로 넘기는가하면, ‘돈 주앙’역의 김다현과 아슬아슬한 스킨십을 선보이며 요염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여성무용수들은 겹겹으로 이루어진 집시풍의 스커트를 흩날리며 시선과 손끝, 발끝이 일체되는 플라멩코를 보여주었다. 남성무용수들은 탭댄스와 같은 통일감 있는 스텝을 선보였다. 공연장에 퍼지는 캐스터네츠와 스텝의 울림은 스페인 기수의 말발굽소리처럼 장대함과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

‘돈 주앙’에서 플라멩코 댄서들은 그저 앙상블에 머무는 수준이 아니라, 극의 시대와 배경을 적절히 묘사하면서도 막간을 이용해 여흥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치러냈다. 이국적인 악기와 보컬의 집시밴드는 1막 스페인 바에서의 ‘산다는 것(vivir)’과 2막 돈 주앙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픔에 잠긴 안달루시아(tristesa andalucia)’를 연주했다. 회전하는 무대, 능수능란한 저글러, 말 모형의 석상, 스페인풍의 소품들이 어우러진 배경 속에서 무용수들은 부채와 가면, 캐스터네츠와 망토 등을 사용하며 스페인의 그곳, 세비야의 춤을 보여주는 극 속의 극을 연출했다.

- 백 마디 대사보다 소중한 41개의 뮤지컬 넘버

돈 주앙의 인물들은 대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는 노래로 삶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대사가 나오겠지’하는 기대는 필요 없다. 대신 41개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이어진다. 앙상블 없이 7명의 배우들이 노래를 소화해야하는 부담이 있음에도 이들의 탄탄한 가창력은 그런 걱정을 불식시킨다. 오리지널 공연에서 사랑받았던 주옥같은 넘버들을 한국어 가사로 들으며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대표곡으로 꼽히는 격정적인 ‘쾌락(de plaisir)’, 사랑에 빠진 돈 주앙과 마리아의 듀엣곡 ‘난 새로워졌지(changer)’, 마리아와 엘비라가 돈 주앙을 동시에 그리며 부르는 ‘그를 생각해(je pense a lui)’ 등은 한 곡 한 곡 흘려버릴 수 없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대사가 없어 내러티브적인 면에서 개연성이 부족할 수 있으나 뮤지컬을 사랑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줄거리를 새롭게 메워주는 노래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 사랑 앞에 무너지는 희대의 카사노바, 돈 주앙

돈 주앙은 익히 알려져 있듯, 희대의 카사노바로 통한다. 그는 그저 한순간 타오르는 육체의 쾌락을 쫓아 여자를 유혹하고 쉽게 배신한다. 정혼녀 엘비라를 배신하고 존경받는 기사의 딸을 농락하고 결투 끝에 기사마저 죽이고 만다.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 돈 루이스, 친구 돈 카를로스와 이사벨마저 그의 방탕한 행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자신을 막아줄 제어장치가 필요했다. 비록 그것이 원한 많은 기사의 저주였다 한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운명의 여인 마리아와의 인연은 돈 주앙이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고 생을 되새겨보는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마리아의 남편 라파엘과의 결투 끝에 생을 마감하는 돈 주앙은 허망하게 ‘사랑으로 나는 죽네(je meurs d’ amour)’를 부르며 스러져갔다. 꽃미남 이미지에 다소 유약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배우 김다현은 돈 주앙을 자신의 캐릭터로 해석한 듯, 여인을 매료시키는 카사노바부터 한 순간 순정에 빠져버린 비운의 주인공까지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질 때에 격정적인 고음의 노래마저 애절하게 들렸고 천하의 카사노바에게 동정심까지 느껴졌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단 하나를 가지지 못한 남자, 돈 주앙. 숱한 사랑을 받고도 단 하나의 사랑을 갖지 못한 아쉬움으로, 그를 바라보는 여인들에게는 그 하나의 사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돈 주앙의 숨결이 깃든 세비야의 밤은 활활 타오른다.


홍애령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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