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6.8.27 목 10: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우리가 그 미친 짓에 열광하는 이유, 뮤지컬 ‘쓰릴 미’

 

Blame Look. ‘비난’을 나타내는 단어인 ‘Blame’에, ‘주목하다’라는 뜻의 ‘Look’을 붙인 신조어이다. Blame Look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의 강렬한 인상이나 카리스마를 보고 주목하거나 추종까지 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소소하게는 강호순이 검거 때 쓴 이탈리아 스포츠웨어 ‘카파’의 모자나, 신창원의 색동무늬의 ‘미소니’ 니트가 잘 팔렸던 것에서부터, 믿기 힘들지만 강호순의 팬 카페가 생겼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혀를 끌끌 차겠지만,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이 공연은 바로 그런 싸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쓰릴 미’는 화려한 오케스트라나 무대 전환도 없다. 피아노 한대와 음침한 검은 배경의 무대가 전부이다. 게다가 내용은 집착과 자기우월에 빠진 두 남자의 끔찍하기 그지없는 범죄 극이다. 우린 왜 그들의 미친 짓에 열광하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가 있다.

- 과연 누가 누구를 조정하였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줄 것. 하버드 로스쿨 입학 예정인 ‘나’와 니체를 추앙하는 ‘그’는, 34년 전 이러한 피의 계약을 맺는다. ‘쓰릴 미’는 이 계약으로부터 시작된 절도와 살인, 동성애를 내용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러한 독특하고 강렬한 키워드는 연신 관객들이 숨을 고르게 만든다. 그러나 더 짜릿한 것은 바로 그 자극들 속에 얽히고 얽혀 들어가 있는 치밀한 심리극이다. 마지막 ‘나’의 반전을 보는 순간 앞 대사, 앞 장면 하나하나가 되새겨지며 오싹함을 느끼는 것은, 잘 짜놓은 추리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쾌감을 준다. 과연 누가 누구를 조정한 것인가. 만족시켜달라며 애원하는 ‘나’와 담담한 고백을 하는 ‘나’, 스스로를 초인이라 믿는 당당한 ‘그’와 마지막 순간에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그’. 과연 무엇이 진짜 얼굴일까. 공연을 다시 되새겨 볼수록, 다시 한 번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고 싶어진다. ‘이유는 없어, 단지 우린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난 진실을 가지고 널 팔아먹었어.’ 같은 날카로운 대사들과,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훈남 배우들의 연기호흡은 ‘과연’이란 말을 내뱉게 한다.

- 피아노 선율, 그 숨도 쉬기 힘든 긴장감

피아노 소리가 단순한 검은 배경을 소름 끼치리만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메우고 있다. 한 순간도 긴장의 호흡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인 이 공연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든 것은 바로 음악이다. ‘제 3의 배우’라는 말을 할 정도로 피아노는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다. 단조와 불협화음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잘 살린 데다, 수많은 터치는 심박음을 닮아 배우들의 감정선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과감한 악기의 절제로 음악이 무리하게 끼어들지 않고, 마치 대사의 일부처럼 느껴지며 또 한 명의 공범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살인을 결심할 때의 선율은 의외로 아름다워 또 한 번 등골이 오싹하게 한다.

- 더 대단한 것을 하고 싶지 않니.

극 중 ‘그’가 묻는다. ‘더 대단한 것을 하고 싶지 않아?’ 관객들의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이 스릴 있는 범죄에게도 더 대단한 것을 보여 달라고 살짝 졸라본다. 모래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그라지는 영상에 담긴 섬세함이 2층 관객들에게까지는 미처 미치지 못한 것 같다. 2층에서는 긴장의 끈을 붙잡고 있기에는 다소 거리적 문제가 있다. 거의 변화가 없는 무대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더없이 훌륭하지만 자칫하면 지루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또, 마지막 반전이 드러나는 장면이 좀 더 강화됐으면 내용이 전반적으로 탄탄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매 캐스팅마다 뮤지컬계의 블루칩들을 가득 배출해 낸 저력을 살려 좀 더 나아가는 공연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Thrill me. 날 흥분시켜줘. Me는 누구일까. 성적 쾌감을 느끼는 나? 범죄의 쾌감을 느끼는 그? 아니, 완성도 높은 음악과 스토리 구성, 최고의 배우들의 듀엣에 몸서리 치고 있는 바로 우리, 관객일 것이다. 이 뮤지컬은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실제 범죄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범죄의 재판에서 변호사 Clarence Darrow가 최종변론 때 말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지금도 유명한 문구로 회자된다. 그래, 내용이 아무리 잔인하고 부도덕적이어도 우리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이 훌륭한 뮤지컬 ‘쓰릴 미’를 말이다.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젊은 비평그룹 ‘독’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