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책 없이 ‘착한’ 공연들이 있다. 한 치의 비뚤어짐이 없는 그들의 착한 메세지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현실을 껴안고 가는 굳센 외침이다. 그렇기에 뮤지컬이 전하는 메시지는 뮤지컬이 끝난 후에도, 귀가하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가볍게, 가슴은 따뜻하게 한다. 이것이 ‘착한’공연들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뮤지컬 ‘빨래’도 그런 종류의 공연이다. 한국 뮤지컬 대상의 작사, 극본상을 수상한 ‘빨래’ 이번에는 소극장 뮤지컬에서 대극장으로 옮겨져 더 큰 무대로 관객을 찾아온다.
- 잘 짜인 구성
사실 ‘빨래’의 기승전결은 100프로 예측가능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반전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미스터리한 사건도 없다. 뮤지컬 ‘빨래’는 다닥다닥 붙어사는 달동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갈등, 사랑, 화해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 ‘빨래’의 구성에는 새로움은 없지만 대신 지독히 익숙한 무언가가 있다. 달동네든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란 는 것이다. ‘빨래’의 달동네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상처받았다가, 결국에는 정든 마음으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오히려 평범한 현대인은 이웃이 주는 따뜻한 의지감을 외면하는 편인지 모른다. 또한 뮤지컬 ‘빨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나열식의 구성을 취함에도 사이사이의 긴밀성과 전체의 유기성이 뛰어나다. 극의 전체적 내용과 별 상관없는 사족적 장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서점 직원 나영이의 러브스토리를 필두로, 같이 사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피어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갈등과 화해의 감정이 치솟는 장면에서 필연성이 부족해 보일 때가 드물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들 들어, 제일 서적의 사장이 왜 바로 그 순간에, 큰언니를 해고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않다. 바로 앞 장면에서 신명나게 춤추고 있던 사장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 ‘빨래’의 재조명
달동네 사람들의 삶은 하나같이 불우하다. ‘서울 살이 몇 년’ 이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착잡하기 짝이 없다. 밥 먹듯이 해고당하고 이사하고 무시당하며 사는 삶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러한 삶의 모습에 결코 눈살 찌뿌리게 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삶은 충분히 살만한 것이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에게는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은 방의 거리만큼이나 가깝고, 여기저기의 묵은 때만큼이나 진득한 그들의 사이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겪는 고충과 애달픔을 알기에 그들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준다.
뮤지컬 제안하는 현실의 구체적 타개방안은 다름 아닌 ‘빨래’이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어제를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빨래가 제몸을 바람에 맡기는 것처럼...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당신의 아픔 마음 우리가 말려줄게요’등의 가사에서도 알 수 있다. 더럽고 낡은 옷을 씻고 말려 새 옷처럼 다시 입는 것처럼, 우리의 상처입고 괴로운 마음도 빨래와 함께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에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하는 빨래 장면에서는 비눗방울들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허름한 동네가 아름답고 동화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 아기자기한 달동네 풍경
무대 위에는 아기자기한 달동네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1층에는 다닥다닥 붙은 셋방, 2층에는 옥탑방과 스크린으로 표현된 하늘이 있다. 조그만 틈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동네의 집과 방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밀집되고 좁은 공간을 하나하나 활용한 세심함이 엿보인다. 배우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출입구는 실로 다양하며, 집구석에 붙은 작은 창문하나도 그 구색이 있고 그 쓰임이 있다. 작은 공간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연극적 장치가 된다.
강민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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