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우한 시대에는 늘 ‘영웅’이 있어 왔다. 영웅은 기꺼이 시대를 짊어지며, 천부적 기개와 불굴의 투지로 시대가 목마른 승리와 희망을 일구어낸다. 이 같은 영웅의 ‘영웅’적 면모에 비해 영웅의 ‘비영웅’적 면모는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그렇다. 우리는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과 천하무적 거북선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으나, 정작 이순신의 삶과, 이순신이라는 사람자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 영웅 ‘이순신’을 연민하고, 또 우러르
뮤지컬 ‘이순신’은 그의 뿌리인 가족에서 그의 영웅적 면모의 근원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순신은 전장의 영웅임에 앞서 수십 명의 식솔을 둔 가장이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걱정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영웅으로서의 그를 움직이고 채찍질하는 힘이다. 또한, 뮤지컬은 영웅의 인간적이고 연약한 부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순신은 전장 중에서도 시시때때로 가족을 생각하고, 온갖 악몽에 시달리는가 하면, 육지의 시체더미를 보고는 거의 미쳐가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확실히 영웅이다. 이순신의 고민과 고뇌는 결국 그의 갖추어진 포부와 능력을 더욱 단단히 할 뿐, 그는 막힘없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뮤지컬 속의 그의 발언은 힘, 위엄, 감동을 동시에 지녔다. 이순신의 숱한 결심과 감탄, 절규들은 뮤지컬의 메인넘버가 되어 웅장한 음악, 조연배우들의 열렬한 뒷받침과 함께 극장을 가득 채운다.
- 이순신보다 더 큰 힘, ‘전어떼’(?!)
영웅이 말과 행동에 크나큰 힘과 정당성 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웅은 불우한 시대의 목마른 요청이기도 하지만, 고달프고 힘없는 민중들의 염원에 대한 응답이다. 민중이 영웅 따르는 것은 그가 민중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민중의 마음은 곧 영웅의 근원이자, 원동력이다. 이순신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거는 민중들의 염원하는 눈은 이순신만을 바라보던 애처로운 수십 식솔의 눈과 닮았다. 이처럼 영웅과 민중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순신이 나라를 구원한다면, 이순신을 구원하는 것은 민중들이 지닌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들이다. 적선에 숨어있던 당돌하고 순수한 조선 소녀는 승리에 도취된 조선의 장군들에게 전쟁이 남기고 가는 피폐함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이자, 전쟁에 상처입고 지친 이순신의 마음을 잠시나마 정화시켜주는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뮤지컬 중간에 불쑥 등장하는 전어떼는 무대 위의 갈등과 대립의 상황을 순식간에 화해와 어울림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은빛 수트와 신체언어로 형상화된 전어떼들은 직접 무대를 점령하여 그들의 몸짓들을 자유롭게 보여준다. 이순신의 ‘전어떼를 잡아라!’란 외침을 필두로, 모든 사람들은 전어떼 잡기에 열중하며 세상의 무거운 짐과 깊게 패인 상처들을 잠시 잊고 순수한 형태의 삶을 만끽한다.
- 대극장 공연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압권적’ 장면들
뮤지컬에서 ‘바다’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주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왜와 조선을 갈라놓는 벽이자 이어주는 통로이며,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공간이자 전어떼가 펄떡대는 생명의 공간이다. 뮤지컬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해전씬에는 두 개의 인상 깊은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판옥선, 거북선, 왜선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배들이 자유롭고 실감나게 무대를 누비는 장면이다. 대극장 뮤지컬의 방대한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택견과 상무놀이를 통해 왜적을 무찌르는 장면이다. 왜적의 기세를 압도하는 조선의 기세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처절한 싸움의 현장을 예술적으로 승화되었다. 이밖에도 장군들의 소소한 움직임 등에 가미된 전통 연희적 몸짓은 한국적 냄새와 멋을 물씬 풍긴다.
강민경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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