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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길을 묻다. 연극 ‘아오모리의 비’

 

 

‘길’이 가진 함의는 다양하다. 집과 직장은 길로 이어져 있고, 직장과 단골 밥집도 물론이며, 퇴근 후 종종 들르는 문화공간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 의미의 길 외에도 우리는 추상적 의미에서의 ‘길’을 가지고 있다. ‘삶’ 이라는 단어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우리가 가야할 길, 즉 삶의 행로는 평탄한 도로 혹은 험한 자갈밭일수도 있다. 무턱대고 가는 길보다 표지판과 지도를 벗 삼아 가는 길이 믿음이 가듯 여기 연극 ‘아오모리의 비’ 에도 서로에게 지침이 되는 이들이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공유하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이 이루는 서사는 자연스럽게 나뉘어 극 전체에 배분된다. 서울 국제공연예술제를 맞아 극단 ‘골목길’ 박근형이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2007년 ‘서울의 비’에 이은 한-일 합작품이다. 역량 있는 한국과 일본의 배우들이 뒤섞여 절묘한 연기를 선보이는 연극 ‘아오모리의 비’는 골목길이라는 극단 이름처럼 서로를 향해 또는 자신을 향해 꼬이고 얽혀버린 삶의 길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무대는 아오모리에서 훗카이도로 가는 페리선 항구로 고정되어 있다. 하체불구의 늙은 여인과 오랜 지기로서 그녀를 돌보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가진 할머니, 공개적인 밀월여행을 떠나는 남녀와 남편을 따라 동승한 부인, 페리선 승무원 셋, 할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가려는 정체불명의 치과의사 하나, 이렇게 4개의 서사에 한국인들로 일본에 에로영화를 촬영하러 온 감독과 에로배우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맛깔스런 5개의 이야기들이 차려진다. 연극 ‘아오모리의 비’는 각각이 가진 삶의 길들을 점차 심화시키며 갈등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서로를 이어주는 마음의 길을 놓아 위안을 삼는 혜안을 보여주어 감정의 균형의 꾀한다.

무대에 등장하는 17명의 배우들은 모두 문제적 개인으로 그려진다. 에로 배우들의 자극적인 성애장면으로 관객의 오감을 순식간에 집중시켰던 극 초반 흥분요소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휘발되어 버린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우울한 과거들과 만만치 않은 현실, 트라우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본질적 테마들이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어 관객들의 표정은 설사 극이 가진 당의(糖衣)에 웃고 있을지라도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 사창가를 전전하던 제니조차 “포르노 배우는 있어도 포르노 인생은 없다.”는 감독의 말처럼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고민을 때론 당돌하게, 때론 절절하게 토로한다. 이것은 페리가 출발하기 직전 제니의 행방불명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하며 후에 자살로 밝혀지는 그녀의 죽음을 통감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평온하며 조곤조곤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연극 ‘아오모리의 비’는 천둥소리와 함께 찾아온 악천후로 예정되어 있던 페리선의 출발이 무한정 지연되면서 그 본색을 드러낸다. 평행선처럼 서로의 길에 대한 정다운 목격자일 것 같았던 인물들의 관계는 어둡고 낮은 조도의 조명, 계속적으로 들리는 빗소리, 비로 인해 두껍고 갑갑해진 의상들과 어울려 얽히고설킨 골목길임이 밝혀진다. 이들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것이 어떠한 길이든 인간적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 다소 진부한 결론이지만 연극 ‘아오모리의 비’가 들려주는 촉촉한 이슬비의 향연은 분명 삶의 희망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정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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