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막바지 우리 곁을 찾아온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 마치 보내야할 2008년의 끝자락처럼 애틋하고 뭉클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딸을 위한 뮤지컬’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 곳곳에는 자식들과 어색하기만한 우리 시대 아버지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연기경력 40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노주현의 관록 있는 연기에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 테비에(노주현)의 대사처럼 “평화로운 조화”가 그 중심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큰 굴곡이나 스펙터클 없이도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객석까지 전달시킨다. 그리고 넘치는 위트가 있다. 우리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일하고, ‘늘 바쁘신(?) 하나님께’ 친근한 기도를 올린다. 이들의 하루가 특별하지는 않다. 참으로 소소한 삶이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은 가족을 더욱 사랑으로 단결시킨다. 마치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는 꿈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나눔이 있다.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식탁 한 자리를 내어주고 정을 나눠준다.
이들의 무대는 늦가을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고즈넉함과 평온, 이것이 이 작품의 주된 이미지다. 그 사이 흐르는 긴장(유태인 탄압)마저 그들의 따스함에 폭 안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음악은 황금빛 눈물 같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매개체인 인간의 ‘눈물’과, 모든 것을 다 가진 그 황금빛 풍요로움을 이 작품의 음악이 갖고 있다. 음악은 전통을 중시하는 그들처럼 민속음악적 특징이 강하다. 그러나 매우 세련되고 깔끔한 멜로디를 지녔다. 특히 큰딸의 결혼식 날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축제는 이들의 전통과 소통하고 있는 음악으로 관객에게 매우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무대 위에서 함께하는 오케스트라는 아버지의 심장처럼 작품의 곳곳에 뜨거운 ‘피’를 전달한다. 특히 간간히 무대 위 배우들의 옆에서 깜짝 등장하는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연주자는 태연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사회자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이 정해주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던 그 시절, 전통의 고리를 억척스럽게 이어가려는 아버지는 그 전통 안에서 딸들이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결국 딸들은 모두 그들의 사랑을 찾아 아버지 곁을 떠난다. 아버지 또한 딸들의 진실한 사랑을 알고는 자식을 떠나보낸다. 그 마음이 참으로 쓸쓸하고 또, 눈부시다.
자녀는 ‘손님’이라고 했던가. 부모는 자녀라는 손님을 잘 키워서 다시 사회로 보내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두 가지, 그것은 뿌리와 날개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우리는 과거에게서 진리를 배운다.
이 작품은 사실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다. 가족이 늘 함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지만,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현실이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 가족이라는 의미는 21세기 들어서서 더욱 넓어졌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라는 말에는 무언가 마법이 걸려있는 듯 하다. 사랑이 있고 나눔이 있던 우리 마음속의 고향, 그 머물고만 싶었던 순간들 위로 황금색 노을이 진다.
공정임 전문기자 kong24@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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