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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리뷰] 즐겁지 않은 인생 즐겁게 살기, 뮤지컬 ‘즐거운 인생’

 

‘즐거운 인생’은 많이 들어봤던 제목이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그들의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홍보용 대형 브로마이드나 팜플렛에 나온 주인공들은 밴드에서 사용되는 악기들, 이를테면 베이스 기타나 일렉트릭 기타, 드럼을 치는 모습이다. 그런데 뮤지컬 ‘즐거운 인생’과 밴드는 무관하다. 극의 종반부까지 관객들은 배우들이 언제 악기를 들고 신나게 연주하나 기대했겠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하필 왜 뮤비컬도 아니면서 ‘즐거운 인생’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일단 악기를 들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충분히 홍보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스토리 차원에서 볼 때 제목으로서 ‘즐거운 인생’은 적절하다. 어차피 제목을 ‘즐거운 인생’으로 지었으니, 동명 영화의 대중 인지도에 편승하여 홍보하겠다는 전략일까? 이러한 수로 관객들의 호기심-어떻게 뮤지컬로 만들어졌을까?-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관객들을 기대치를 높여 놓았지 않았을까? 다행히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뮤지컬을 보여주어서 관람 후 제목에 대한 반감은 줄어든다.

‘즐거운 인생’을 드라마를 보는 관점에 집중해 보면 인생, 사랑, 음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와 만나게 된다. 이 세 가지 키워드의 절묘한 교집합 찾기가 ‘즐거운 인생’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인생’ 또는 ‘즐거운 인생’ 또는 ‘즐거운 인생’라는 식의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며 각자의 의미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전화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다. 전화 때문에 편지를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만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외롭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다. 아예 황동규 시인은 홀로움이라는 명사를 새로 만들어냈다. 전화 자체가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만큼 상대방과 통화를 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때론 장난으로 포장되고 그래서 목소리를 앞에 내세운 가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이다. 소통의 불가능성이 불러온 문제는 그들의 인생 자체를 뒤흔든다. 자신의 인생이 시나리오인지 개그의 한 장면이지 오디션 현장인지 자신의 삶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런 혼란한 상황을 적절하게 장면화 시킨다.

소통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음악이 등장한다. 내면에서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고 나무의 흔들거림을 느낀다. 마음의 귀는 세계를 향해 열려있고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 인물들은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나가고 서로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면 사랑은? 사랑은 그야말로 욕심이다. 삼각관계를 만드는 범진과 세기 그리고 선영은 끝내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소통은 흥미롭다. 범진과 선영의 만남은 천원짜리 지폐에 남긴 선영의 전화번호이고, 이것을 보고 전화하는 인물은 범진 밖에 없다. 이 둘의 만남은 가히 영화 ‘세렌티피티’를 생각나게 하지만,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외로움이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상상은 놀랍다. 외로움이라는 명사가 단지 홀로 있음을 넘어서 소통의 대상을 찾는 욕망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작품은 예리하게 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삼각관계의 한쪽을 맡고 있는 세기와 선영의 관계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너무 희미하다. 돈에 얽힌 뻔한 동정심이 재빨리 사랑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둘의 소통은 요원하기만 하다.
음악과 무대를 살펴보면, ‘즐거운 인생’은 음악 보다는 드라마로 기억되는 뮤지컬이다. 스토리 라인에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전개되는 음악은 어느 순간 단조롭게 들릴 수 있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친숙한 멜로디 라인이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뮤지컬 넘버를 뽑을 수 있는 좋은 곡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창작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 또는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대에 있어서 돌출 무대를 선택한 ‘즐거운 인생’은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는 막이라는 틀 안에 갇히기 보다는 얼굴뿐만 아니라 몸동작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이는 ‘즐거운 인생’이 보여주려고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에서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부분과 맞아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은 보여주기 위한 과도한 액션보다는 사실적이고 절제된 동작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도입부에서는 측면에 앉은 관객에게도 시선을 주거나 옆모습에 신경을 쓰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돌출 무대일 필요가 있을까’ 또는 ‘무대가 너무 크다’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배우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즐거운 인생’은 결코 즐겁지 않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외로운 개인들의 외침이다. 인생에는 언제나 비트가 있다. 바람 부는 소리 덕분에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덕분에 가슴이 시큼한 소리 등. 느끼지 못한다면 저 심연에서 살아있다고 고독하게 외치는 심장의 고동소리라도 들어보아라. 음악이 들리는 것은 인생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어차피 살 인생 즐겁지 않더라도 즐겁게 살아보자고 마음먹자!’ 이것이 뮤지컬 ‘즐거운 인생’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김도형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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