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공연 전 부터 뮤지컬 배우 오만석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동명 영화인 ‘즐거운 인생’을 원작으로 하고 있단 오해를 종종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도리어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이(爾)’의 작가 김태웅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제목과 다르게 우울하게 짝이 없는 인생들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 나가려고 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지고 공허함만이 가슴 한 구석을 채운다. 37살 고등학교 음악교사 범진은 오늘도 전신 거울을 벗 삼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엄마는 어렸을 때 집을 떠났다. 돈을 벌어 오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사고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버렸다. 세상은 나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고등학생 세기는 이 불공평한 세상, 보란 듯이 비웃어준 찰리 채플린이 되기로 결심한다. 시나리오를 위해 지폐에 전화번호를 적었다. 진짜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만난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매일 같이 고등학생 녀석이 사채업자 대신에 빚 독촉을 하러 온다. 시나리오 작가 선영은 오늘도 자신의 꿈을 짓밟는 현실을 원망하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 속 대부분의 넘버들은 락(Rock)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즐겁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이 부르는 곡들은 이와 대비되게 대체로 경쾌하거나 강한 비트의 헤비한 락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 세기와 반 학생들이 부르는 ‘한판 붙자’와 경찰서에서 선영의 자살 소식을 듣고 범진이 부르는 ‘그럴 리 없어’는 이런 락 사운드를 충실히 반영한 넘버들이다. 또한 세기역의 배우 정원영이나 선영역의 배우 백주희는 시원시원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 곡들을 한 층 더 매력 있게 전달한다. 다만 라이브 밴드 세션의 음향이 배우들의 목소리를 묻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노래의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겨나 아쉬움을 남긴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의 생략이 많다. 선영과 범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세기가 왜 선영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등의 과거 속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들 간의 짧은 대화에서 막연하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선영의 자살 후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경찰서로 모이면서 ‘세상은 좁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보이기 위해 앞서 주인공 외 인물들에 투자한 시간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투자했다면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선영을 향한 세기의 사랑은 극 초반 “사랑한다고요”라는 대사 한마디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 구조를 형성할 것 같았던 선영, 범진, 세기의 이야기는 그 이후로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위에 언급했듯이 주변인물에게 할애한 시간이 많다. 이런 이유로 극 중반부터 결말까지의 플롯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급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연극을 뮤지컬로 옮기면서 생략을 감행해야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면 과감하게 삭제할 부분을 삭제하고 주요 에피소드에 집중했다면 더 밀도 있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은 관객이 완전하게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군데군데 존재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범진과 선영이 선영의 방에서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듯이 그 상층 무대 주변을 둘러 앉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팝콘을 먹으며 비웃기도 한다. 이는 관객이 범진과 선영의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 또 하나는 범진과 세기의 인생을 바꿔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영이 다른 배역의 조연으로 여러 번 출연한다는 점이다. 범진은 경찰서에서 선영의 자살 사실을 전해 듣는다. 헌데 그 자리에는 선영역의 여배우가 여경찰관 복장을 하고 서있다. 범진은 그녀를 향해 “선영아”라고 소리친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무언가 다른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지만, 그녀는 “누구세유?”로 화답하며 그 기대를 일축시킨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비극적으로 자살을 택한 여주인공 선영은 이후에 코믹한 배역으로 재등장하면서 그녀의 죽음이 지닌 상징성을 퇴색시킨다. 선영의 죽음 후 세기와 범진을 묶어 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범진의 음악에 대한 집착적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던 세기는 현실과 맞딱들이며 ‘인생의 진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인생의 진동’은 흔히 말하는 행복, 기쁨 등의 긍정적인 감정뿐만이 아닌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희로애락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극 전체에서 주인공에게 음악 자체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크지 않다. 실제 음악 자체가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주기 보다는, 그들은 음악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인생과 음악이 가진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침묵’이 4분 44초의 음악이 되듯, 인생이란 단조로운 하나의 선이 아닌 굴곡 있는 생명을 지닌다. 그들을 매일 하루하루가 즐거운 인생일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 들인다. 그들은 말한다. 신날 것은 없는 세상일지라도, 그 인생 속 “삶의 진동”을 느끼라고. 글 이예린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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