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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깝거나 먼 그대를 찾아 부르는 노래, 뮤지컬 ‘헤드윅’

 

 

우리에게는 여러 얼굴의 ‘내’가 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오래된 친구와 술을 마실 때, 직장에서 회의를 할 때의 나는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다양한 자아 중에서 본래 자신의 자아와 사회적인 가면으로서의 자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그 둘 사이의 지독한 싸움을 보여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며 그저 한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삶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그가 원하는 삶과 사회가 덧씌운 굴레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며 울부짖는 헤드윅의 눈동자에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비친다. 자신의 일그러진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반쪽을 찾아, 영원한 사랑을 찾아 황야를 헤매는 두발달린 짐승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는 짙은 화장과 가발 속에 성난 1인치를 감추고 노래하는, 헤드윅의 처절한 제의 현장이다.

- 헤드윅의 노래를 듣는 자여, 가면을 벗어 던지라!
사회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을 강요한다. 인물person과 가면persona은 하나이면서 또 둘인 불가분의 관계다. 점점 더 우리는 가면과 인물이 분리된 삶을 산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닮지 않은 단계에 이르러 이른바 인물과 가면의 분열이 시작된다. 나와 나를 표상하는 가면이 분리될 때 인간은 미치고, 사회는 그 광기를 방조한다. 뮤지컬 <헤드윅>은, 가면이 인물에게 요구하는 현실원칙을 벗기려는 욕망원칙이 난무하는 굿의 현장이며 한 인물에게 주어진 가면과 그 역할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강제된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사회의 질서로부터의 추방을, 제도화된 현실로부터 욕망으로의 전이를 뜻하는데 <헤드윅>의 공연장은 기꺼이 현실에서 추방당한 인물의 욕망을 보호하고, 그 억압된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장소가 되어준다. 그래서 헤드윅이 가발을 벗어던지는 장면에서 우리는, 안심하며 해방의 카타르시스에 몸을 맡길 수 있다.

-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배우의 힘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을 연기하는 연기자 일인의 재량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왜 성전환 수술을 했고 어떻게 동독을 탈출하였으며, 토미와는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는지를 회상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헤드윅 혼자 모든 이야기를 끌어나가야만 한다. 오만석의 공연을 ‘오드윅’, 송용진의 공연을 ‘송드윅’과 같이 애정 어린 닉네임으로 부르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연기자의 영향력이 큰지 알 수 있다. 헤드윅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누구냐에 따라 공연은 굉장히 새로워지며 또 다른 해석의 묘미를 선사한다. 한편, 드랙퀸 출신인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을 여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또한 매우 흥미롭다. 이츠학은 헤드윅의 뒤편에 서서 주로 높은 음의 코러스를 해 주기 때문에 여자로 캐스팅해야 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러한 아이러니적 캐스팅은 성전환 수술 실패자로 남성 성기의 일부를 가지고 여장을 하며 살아가는 헤드윅과, 터프한 외모의 왕년 드랙퀸 이츠학이 보여주는 이중적․모순적 성性과 맞물려 뮤지컬 헤드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보통 파워풀한 가창력의 여배우가 이츠학역을 맡아 그 만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 스타일리쉬 락 뮤지컬의 대명사
뮤지컬 ‘헤드윅’은 그 내용의 철학적인 깊이와 함께, 눈을 즐겁게 하는 아트 비주얼적인 면모 또한 풍부하다. 무대 배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있어 극의 내용 진행에 따라 다채로운 그림과 사진들이 펼쳐져 몰입을 돕는다. 헤드윅이 “the origin of love”를 열창할 때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가 그림동화처럼 펼쳐지며 관객을 신화의 세계로 이끈다. 헤드윅의 화려한 의상과 가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이다. 한편 조명을 최대한 줄여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라이브 카페의 분위기를 살리며, 헤드윅만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자주 사용해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극의 후반부에서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혼자 노래하는 그를 향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환상마저 불러일으킨다.

- 다양한 메타포의 향연
공연 속에 넘쳐나는 다양한 상징들을 찾아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모호하고 불안정한 성정체성을 보여주는 헤드윅과 이츠학의 캐릭터 설정, 헤드윅의 고향이 반으로 갈라진 독일, 그 중에서도 억압적이고 구속적인 동독이라는 점, 참회의 노래를 하는 토미를 헤드윅 그 자신이 연기한다는 점, 헤드윅이 공연하고 있는 장소가 타이타닉호 생존자들이 묵었던 호텔이라는 점 등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메타포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 보물찾기 하듯이 하나씩 찾아내어 감상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중요한 실마리들로 쓴다면 더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되어 줄 것이다.

- 하나 됨에 대한 열망, the origin of love
뮤지컬 ‘헤드윅’은 완전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광기어린 살풀이다. 플라톤은 ‘향연Symposium’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빌어 사랑의 기원을 설명한다. ‘오래전 인간은 소년과 소년이 한 몸으로 붙어있는 해의 아이들, 소녀와 소녀가 한 쌍인 땅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가 한 몸인 달의 아이들 세 종류의 완성체였다. 그러나 완성체로서의 인간이 갖는 능력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가 인간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사랑이란 완성된 전체를 향한 열망, 즉 잃어버린 반쪽과 결합하여 오래 전 그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완성에 대한 열망은 사랑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욕망의 근원이다. 자기 존재의 결핍과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모자람을 채워줄 타 존재를 욕망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경로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동기이자 내러티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비통하게 알고 있듯이 우리가 완벽히 일체로서의 완성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욕망일 뿐이지 불가능한 것이다. 평생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헤드윅의 인생과 그녀의 좌절, 분노, 원망 등은 또한 그렇기에 필연적인 것이다. 가발 쓴 헤드윅은 가면 쓴 우리 자신이며 헤드윅의 노래는 우리의 노래다.

- 모든 인간을 대신한 헤드윅의 제의祭儀
뮤지컬 ‘헤드윅’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주제의식, 즉 인간의 완성에 대한 열망을 지독하고도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다. 헤드윅이 보여주는 디오니소스적 제의는 인간에 대한 억압과 그것에 대한 광적 반항을 통해, 또 사회의 도덕적 파괴와 모순을 극복하면서 관객을 해방시킨다. 헤드윅의 광기와 굴곡진 삶은 바로 그 도덕적 파괴와 타락한 사회의 모순의 반대편에 놓여 있으면서 진실을 추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즉, 타의에 의해 짓밟힌 완성에 대한 열망은, 헤드윅이라는 제물을 통해 대신 속죄 받고 정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기구한 삶과 지독한 고독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고, 또한 토미의 마지막 고백에 의해 자기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는 그의 모습을 본다. 공연장 안에서 만큼은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와 도덕의 이름은 무화되고 완성에 대한 금기적 욕망을 펼쳐낼 수 있게 된다. 감성의 증폭을 이끄는 멋진 음악과 화려한 비주얼, 탄탄한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된 철학적 주제의 이 뮤지컬은, 우리의 삶에 유의미한 파장을 일으킬 만한 작은 사건이다.


박치연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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