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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음악에 아픔을 묻은 ‘그’ 또는 ‘그녀’의 이야기 - 뮤지컬 ‘헤드윅’

 

헤드윅 영혼의 빛깔은 ‘그’ 혹은 ‘그녀’의 립스틱만큼이나 붉으면서도 우울한 푸른색이다. 과장된 메이크업과 화려한 가발 뒤에 숨겨진 속내는 갓 먼동 트인 새벽녘 어스름한 푸른 안개처럼 슬프다. 뒷골목 가로등마다 떼 지어 달려드는 하루살이 같은 하류인생이지만, 락에 대한 열정과 첫사랑의 아련함을 품고 있는 ‘그’, 아니 ‘그녀’이다. 성전환수술의 실패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헤드윅은 가슴 속에 파묻힌 고독을 쥐어뜯으며 무대 위에서 울컥울컥 슬픔을 토해낸다. 관중석에 앉아있는 우리들은 헤드윅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불꽃같은 열정과 푸른 영혼을 느낄 수 있다.

- 여자의 심장을 움켜쥐는 헤드윅의 강렬한 매력 속으로!
관중을 휘어잡는 헤드윅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마이크를 통해 그의 음성이 극장 안에 울려 퍼질 때마다 관객들은 긴장하고 집중했다. 신경질적이면서 날카로운 에너지가 무대 위에 가득 찼다. 뮤지컬 ‘헤드윅’은 한 트렌스젠더의 인생사를 다룬 이야기이다. 때문에 2시간이 넘는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실력 있는 배우를 찾는 것이 이 작품의 성공 열쇠였다. 이런 의미에서 ‘송용진’과 ‘이주광’을 캐스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심을 뒤흔드는 섹시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밤의 제왕’ 송용진과 에너지 넘치는 노래실력으로 극장 안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주광의 카리스마는 관객을 압도했다. 때로는 남자를 유혹하는 요부처럼, 때로는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반항아처럼, 경계를 넘나들며 변신하는 모습은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헤드윅이 한 번 뛰면, 관객은 열 번 뛴다!
뮤지컬 ‘헤드윅’은 점잔빼며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귀가 쨍할 정도로 날카로운 전자기타의 선율이 고요한 관중의 정적을 깨면, 무대는 흥겹고 열정적인 락콘서트장으로 변한다. 심장박동을 울리는 드럼비트에 몸을 맡기다보면 어느새 엉덩이를 들썩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관중 속을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니는 헤드윅을 따라 관객들도 어느새 일어서서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세대를 초월하는 락음악의 매력 앞에서는 체면 챙기기는 고사하고, 무대 위로 달려 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특히 뮤지컬 헤드윅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angry inch’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은 신나는 비트에 몸을 싣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열광했다. 이게 뮤지컬 헤드윅 공연의 정체성이 아닐까?

- ‘그’ 혹은 ‘그녀’의 눈빛 저 편에 어려 있는 푸른빛의 고독
그러나 뮤지컬 ‘헤드윅’을 그저 가벼운 락콘서트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신나고 흥겨운 락음악 저변에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슬픈 영혼의 감성이 깔려있다. 무대 위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담담하게 늘어놓는 헤드윅의 독백에서, ‘그’와 ‘그녀’,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주변인으로서의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헤드윅은 삶의 목표였던 진정한 사랑을 드디어 찾아냈지만, 다리 사이에 붙어있는 정체불명의 1인치 살덩이의 존재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같이 동성애의 문제뿐 아니라 작품에서는 동독과 서독의 분리, 인종차별문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그 한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헤드윅은 ’인생을 엿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단절과 편견을 생각하게 했고, 어딘가에 있을 반쪽을 찾아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인간의 슬픈 운명’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윤미로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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