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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여유와 노련함으로 다시 찾아오다

 

지난 해 처음 뮤지컬 ‘햄릿’을 보았을 때 설익은 복숭아 맛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햄릿’이 한국 무대에 오르는 첫 순간이었는데 그 웅장한 회전무대도, 배우도, 음악도 설겅설겅한 소리가 날 정도였다. 회전무대는 정신없이 급박하게 돌아갔으며, 배우들은 지나치게 높은 고음을 소화하느라 결국엔 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덜 익은 복숭아더라도 분명 말캉말캉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그 첫 공연의 ‘햄릿’은 생각지도 못한 복숭아의 잘 익은 부분을 먹은 듯 극대화된 쾌감을 주기도 했다. 강열하고, 열정적이며,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햄릿’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햄릿’도 벌써 3차(월드버전) 공연에 접어들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은 ‘저 좁은 무대에 과연 회전무대가 돌아갈 수 있을까?’였다. 시즌 1,2 공연을 모두 지켜본 바로는 넓은 무대에 거의 회전무대만 덩그러니 있었던 듯한데, 이번 씨어터S에서는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 전체가 꽉 짜여져 있었다. 꼭 사건이 벌어졌던 그 현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말이다. 그래서인지 무대가 유독 좁아 보이는 감도 있었다. ‘회전무대를 없애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저 곳을 어떻게 회전할지 유독 궁금증을 유발시키게 했다.

- 허전함에서 알찬 무대로의 변신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된 기분이었다. 좁게만 느껴졌던 무대에서 회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회전을 거듭할수록 그 생생한 느낌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었기에 감탄할 수 있었다. 암흑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는 신비롭고 섬뜩함을 피부로 느끼게 했으며, 슬픈 결말을 충분히 예상케 했다. 또한 급박했던 무대전환도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더욱 섬세해진 인물의 심리
시즌 1의 햄릿호에 비하면 인물의 구성이 더욱 짜임새 있어진 것도 사실이다. 갑작스럽게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이나 가”라고 말하는 햄릿도, 사랑받고 싶었던 거투르트도, 사랑을 갖고 싶었던 클라디우스도 그들의 심리가 더욱 섬세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이 더욱 탄탄해졌으며, 관객들의 이해력을 높일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시즌 1에서 레어티스 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김승대)가 이번 월드버전에서는 햄릿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성장한 그의 모습에 흐뭇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유난히 거투르트 역에 잘 어울리는 서지영과 클라우디우스 역 이정열의 세련된 연기력도 과연 높이살만 했다.

게다가 지난번까지는 남매인 레어티스와 오필리어가 남녀 관계처럼 보이는 묘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동생을 걱정하는 오라비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느껴졌다. 이제까지의 레어티스보다는 좀 더 힘을 뺀 박은태의 레어티스가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

- 한층 여유로워진 구성
2부가 시작되면 이제까지 없었던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유랑단이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인데, 통기타를 들고 라이브를 선보이는 햄릿도 볼 수 있다. 이 때 빠듯했던 장면에 공간이 생기면서 한층 여유로워졌음을 느끼게 했다. 햄릿이 기타를 들고 “죽느냐, 사느냐”를 노래할 땐 ‘아, 이제야 햄릿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안무는 더 단순화됐다. 안무에 있어서는 시즌 1,2가 모두 달랐는데 이번에도 역시 또 달라졌다. 그들의 춤과 동선은 어수선했던 지난 공연보다 더 정리돼 보였다. 장면의 분위기와 의미전달력이 높아졌으며, 따로 노는 듯 보였던 춤의 장르도 알맞게 이어져 무르익은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더 아기자기하고, 맛깔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겠다.

- 더욱 고전다워진 록 ‘햄릿’
고전에 록 음악을 입힌 새로운 시도의 뮤지컬이었던 ‘햄릿’이 좀 더 고전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극을 현대적인 분위기로 재창조한 것이 특징인데 이제까지 관객에게 거친 음악을 어필하고자 했었던 듯하다. 그러나 월드버전의 공연부터는 이야기의 구성과 구체화된 심리에 좀 더 주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안정감 있어진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인 흐름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언제나 ‘햄릿’의 처참한 엔딩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폐허가 된 궁전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문득 휑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암전 후 환히 웃는 배우들과 환생한 듯 서로를 껴안는 햄릿과 오필리어의 행복한 모습은 아마도 관객들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번 ‘햄릿’을 보면서 회를 거듭할수록 그 노련함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했다. 차곡차곡 쌓인 창작자들의 고뇌의 흔적이 이제야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의 감동은 그것의 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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