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고전을 종에 비유하곤 한다. 동일한 형태의 종이라도 어떻게, 얼마나 부딪히는가에 따라 그 울림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원작은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키호테’다. 데일 와써맨에 의해 재구성 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기존 여러 장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울림으로 청명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스페인의 한 지하 감옥, 음울한 기운이 스며있는 땅속 깊은 곳의 에너지가 객석까지 타고 흐른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실감나는 공간 활용은 입체적이고 극사실적이다. 대형 계단과, 쪽문, 그 쪽문 사이로 세어져나오는 햇빛은 지하와 지상을 구별 지으며 실용적으로 설계되었다. 무대공간의 다양성을 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은 돈키호테 내면의 휴머니즘을 살려 서정적으로 비춰진다. 돈키호테가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며 절정에 다다를 때 불그스름하게 번지는 노을의 시각효과는 음악과 함께 리듬을 타고 감동을 배가 시킨다. 또한 밤하늘의 별이나, 해바라기 등의 상징적인 배경은 극의 의미 찾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스페인의 정서를 흠뻑 흡수하고 있는 ‘맨오브라만차’의 음악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성격을 프리즘처럼 굴절시켜 스펙트럼하게 비추어 낸다. 배우 ‘류정한’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두 캐릭터를 넘나들며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려는 소설 속 돈키호테를 실감나게 묘사시켜주었다. 삶에 지치고 멍든 가슴으로 거칠게 대항하지만 결국 돈키호테를 통해 희망을 알아가는 창녀 알돈자를 연기한 ‘윤공주’는 절제된 연기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 몸을 아끼지 않는 리얼한 액션으로 빛나는 감동을 선사했다.
오늘도 우리는 쉬지 않고 현실을 향해 달려간다. 시간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찢겨 나가는 달력의 공백만이 공허하게 뚜렷하다. 하루하루 새로운 희망도 가져보고 기운도 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면 현재의 고통은 더욱 암울하고 힘겨울 것이다.
암울한 현실을 변형 시키는 구조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사용한 것이 극중극 구조이다. 인생은 연극과 같은 것이다. 나의 인생이라는 한편의 연극에 어떠한 극을 삽입시키는가는 자신의 능동적 선택에 달려있다. 설사, 그것이 이미 짜여진 각본이라 할지라도 연기를 하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순탄치 않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차피 멈출 수 없는 연극이라면, 사이사이 극중극도 삽입시키며 새롭게 주체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하루, 동일한 공간에서도 생각의 전환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 주체적인 연극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우리는 꿈을 가져야하고, 어느 자리에 있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 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바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일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욕도, 도전도 새로운 경험도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화폐적 인간, 자신의 안위보존을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는 인간, 현실 안에 순화된 개인을 만들어가는 인간 등을 통틀어 ‘종말인간’이라 이야기 한다. 이에 필자는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거짓으로 꽉 찬 허무주의적 절망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창의적 희망과 사고를 가져야 함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못된 믿음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심미적인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부조리는 받아들되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야한다. 끊임없이 출렁이고 변화하는 반복적인 삶에 구체적인 선택으로 건강한 변신을 이루는 지치지 않는 ‘나만의 인생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의 좌표를 제시하는 것이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이다.
이정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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