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가 발생한지 34년 후, ‘나’는 현재 7번째 가석방 심의를 받고 있다. ‘나’는 왜 심의를 받고 있는 걸까? 사건은 ‘나’의 기억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간다. ‘그’가 등장하고 ‘나’와 ‘그’의 관계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갈등은 점점 갈등을 낳고, 관객의 호기심은 점점 깊어진다. 뮤지컬 ‘쓰릴미’에서 극의 시작부터 제기된 의문들은 스릴 넘치는 스토리 라인을 그리며 밀도 있는 드라마를 창출해 나간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스토리 전개는 일탈과 집중을 한 데 엮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뮤지컬 ‘쓰릴미’는 객석 점유율 90%의 인기작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대가 심심해 보인다. 등장인물도 ‘나’와 ‘그’ 둘 뿐이고, 의상도 깔끔한 수트 한 벌, 무대도 까만 배경이 전부다. 뮤지컬이라 하기에 춤도 없고, 코러스도 없다. 하지만 간결한 배경덕분에 철저히 계산된 무대 기술의 첨예함은 더욱 ‘나’와 ‘그’의 복잡한 심리를 시리게 파고든다. 게다가 오직 피아노 선율과 5음으로 함축된 노래의 완벽한 상승효과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점점촉진 시킨다.
- 피스톤에 빛과 어둠의 조명을 채워 관객의 심리를 당겨다 밀었다
무대는 ‘나’의 무의식을 따라가며 기억 속 장소로 재구성된다. 가석방 심의실이 되었다가, ‘그’를 향한 사랑과 증오로 범벅된 ‘나’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기도 한다. ‘나’의 기억에 따라 시시각각 전환되는 무대는 사건을 진행시키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관객을 극 중으로 압축시키는 피스톤 역할을 한다. 빨갛고 파란 원색의 조명 또한 팽팽한 긴장의 줄을 조여 주었다. 특히, 유괴 당하는 어린아이를 가늘게 조명되어지는 스포트라이트로 대신한 것은 사실보다 더 섬뜩하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객석과 무대를 경계 짓는 나무 턱은 원형 소극장을 입체감 있게 만들며, ‘나’와 관객의 심리적 경계라인을 만들어놓았다. 나무 턱을 경계로 관객은 거리를 두고 ‘나’의 심리를 관찰하며, 배우들이 나무 턱 위로 올라서며 거리가 좁혀지면 묘한 스릴을 느끼게 된다.
- 인간의 파괴 본능을 꿰뚫어 지금의 모순을 들추다
두 남자의 관계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을 꿰뚫는 뮤지컬 ‘쓰릴 미’는 희대의 살인사건이라는 실제 사건과 동성애라는 코드를 바탕으로 인간의 암흑을 직설법으로 표현 작품이다. 그 암흑은 파괴, 폭력성, 극단적 일탈, 지금 우리시대의 감추어 진 어두운 면의 자화상이다. 뮤지컬 ‘쓰릴미’는 동성애나 유괴살인보다 사랑과 증오의 경계에선 부유층 천재소년들의 파괴과정을 통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인간의 잠재된 파괴본능을 두 남자의 극단적 심리 관계를 통해 세밀하게 들추어냈다.
‘쓰릴 미’가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는 데는 흥미로운 소재들과 훈훈한 배우들 몫도 컸지만 탄탄한 플롯의 전개와 더불어 인간의 내재적 욕구를 비롯해 사회적 이슈들을 파헤쳤기 때문이 아닐까? 1920년대나 현재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점점 더 역한 하수구 냄새를 풍긴다. 불나방 같은 자본주의와 언론, 권력, 빈껍데기 같은 인간관계, 늘어나기만 하는 범죄율 등 ‘쓰릴미’에서 던져주는 의문은 ‘나’와 ‘그’의 심리싸움만이 아닌 것이다. ‘쓰릴미’는 이렇게 단편적인 스토리를 통해 모든 것의 근본을 설명하려한다. 늘어나는 범죄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사회의 강자와 약자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하는가 등 ‘쓰릴미’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문은 ‘누가 누구를 조정 했는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이다.
이정연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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