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화는 판타지다. 동화 속에서는 현실의 그 어떤 난관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착한 상상력은 주인공들을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까지 무사히 착륙시킨다. 무엇이든 가능한 동화이므로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 그 꿈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다. 동화 속에서 끊임없이 권선징악, 계급의 초월, 진정한 사랑을 운운하는 주제가 변주되는 까닭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꿈꾸고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슈사인보이’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동화다. ‘장화신은 고양이’라는 고전동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리한 고양이가 꾀를 써서 가난한 주인을 부자집 도련님으로 만든다는 줄거리는 현대를 배경으로 다시 한 번 변주된다. 여기서 계급은 흥미로운 키워드다. 현대사회 역시 엄연한 계급사회다. 회장 딸로 태어나면 회장 딸이라는 신분으로, 구둣방 아들로 태어나면 구둣방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계급은 세속 된다. 다만 오늘날의 계급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계급 상승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 가능성이 또 문제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누구나 이 가능성에 맹목적으로 달려든다. 이 가능성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한다. 성공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가능성을 갖기 위해 사람들은 땀과 노력, 혹은 돈을 쏟아 붓는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소중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슈사인보이’는 관객을 향해 묻는다. 뮤지컬 ‘슈사인보이’는 욕망에 관한 동화다. 도심 속 성처럼 세워진 빌딩의 상무 정태수와 구두닦이 소년 김상구를 통해 계급적 욕망이 투사된다. 돈과 명예.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랑. 사람들이 흔히 꿈꾸는 것을 얻는 데에는, ‘조건이 좀 되는 남자’ 정태수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사실 김상구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동화 같은 설정은 인해 김상구가 첫 번째 바늘구멍을 통과해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회사에 들어간 김상구는 다른 지원자와 면접을 보게 되는데, 극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코믹한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진 ‘덜덜덜’은 면접시험 앞에서의 두려움, 떨림, 간절함을 잘 그려낸다. 이어지는 면접장은 군대 분위기로 바뀌고, 면접은 충성도 테스트로 대신한다. 꿈은 접었는가? 일류대학을 나왔는가? 힘이 되 줄 수 있는 끈(사람)을 갖고 있는가? 과장된 충성도 테스트는 회사의 채용 풍경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학벌, 인맥, 재산 등 계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어느 한 가지 조건에도 해당되지 않는 지원자는 탈락이다.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함께 웃고는 있지만,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관을 헤쳐 나간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신발에 대해 아는 것은 많은 주인공 상구는 자신의 특기를 마음껏 발휘한다. 신발을 통해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내는 상구의 감성마케팅은 극의 개연성을 높이고, 인물들 뿐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하지만 극은 후반부로 갈수록 동화라는 본연의 정체를 숨기지 못한다. 상구의 정체가 드러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자 (즉, 극이 조금씩 현실성을 획득하게 되자) 익숙한 판타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해피엔딩을 위해 극은 상투적인 설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구두닦이 소년 상구는, 운명 같은 사랑을 노래하는 철없는 회장 딸 민희의 은사를 얻게 된 것이다. “사랑 앞에 신분 따윈 필요 없어!”를 외치는 이 둘의 해피엔딩은 앞에서 보여준 세태풍자를 씁쓸하게 만든다. 정 상무 라인을 탄 이 부장은 침몰했지만, 민희 라인을 탄 상구는 성공한 셈이다. 그들의 운명 같은 사랑이 설득력을 가져야 해피엔딩인데, 평범한 사내 연애 에피소드를 두고 운명을 운운하기엔 아쉬움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상구가 인맥으로 성공했다는 의심뿐이다. 행복한 결말로 상구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순간 극장의 안과 밖이 몇 백 광년의 거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판타지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며, 약간의 허탈함을 마주할 찰나, 멀티맨은 현실과 이야기를 잇는 다리 하나를 놓아준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일어날 겁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니까 말이죠.” 무대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 혹은 기대를 객석으로 날린다. 그것들이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동화와 뮤지컬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니까 말이다. 김수영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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