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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대한 단상,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

 

모처럼의 진지한 뮤지컬이 올 여름 더위도 잊게 만드는 듯하다. 바로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 진실에 대한 간구함이 돋보이는 뮤지컬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각색한 이 뮤지컬은 현대적이면서도 일본의 전통적인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묘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예상해 본다.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흑백영화 ‘라쇼몽(羅生門. 1951作)’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Prolog -무엇을 보았는가?

막이 오르기 전 무대를 비밀스럽게 감싸고 있는 천막이 있다. 무대 위쪽 벽면에는 초점 없는 영상과 함께 조용히 흔들리는 방울소리가 불안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어서 그 안을 몰래 들여다보는 네 명의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고개를 숙여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다. 그들이 천막을 날카롭게 걷어내자 사방이 뚫린, 숨겨둘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 열린 무대가 보이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대는 더 미심쩍은 느낌을 준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 말이다.

1부와 2부 시작은 이렇다. 무대를 가로막은 천막을 걷어내는 배우들과 이어 등장한 남, 녀. ‘케사와 모리토’의 등장인물일 터이다. 그러나 1부와 2부의 프롤로그는 같은 형태이지만 완전히 반대된 장면이다. 관객들은 한 부부의 죽이는, 혹은 죽임을 당하는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1부와 2부의 같지만 다른 결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믿었던 진실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등장인물들은 가부키(歌舞伎)에서나 볼법한 전통춤을 구사했다. 짙은 일본 색을 위해 우키요에(浮世繪. 14~19C 서민생활을 배경으로 한 회화양식) 영상도 사용하였지만, 그 몸짓은 몸의 밖으로 흐르는 강한 에너지와 섞여 애매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멜로디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일본의 전통 느낌을 위해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였지만, 정작 배우가 보여준 타국의 춤사위는 마이너스였다고 본다.

불안과 긴장, 부조화 속 조화로움 - 라쇼몽 R shomong

1951년 미국, 그 시대 유행하던 흥겨운 음악이 연이어 흘러나오지만 그 특유의 불협화음은 아주 일본적이다. 일본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의 결합.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막의 살인사건은 각 인물마다 취조 당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진실이라 말하며, 그 자리에서 하나씩 행해지는 현상은 곧 진실에 대한 믿음이 된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 가냘픈 끈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놓쳐버린다면 그 때부터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관객의 믿음이 흔들리고 의문이 또 다른 의문을 낳을 때, 우리는 어설픈 미로 속에서 한 가지 추측을 하게 된다. 바로 제목이다. ‘R shomong.’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들이 있었던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영화이다. 그 영화의 간판에는 스펠링 하나가 빠져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제목이 ‘라쇼몽’이라고 잘도 읽는다.

무언가 숨겨져 있는 진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그렇게 진실은 존재한다.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시간 - Glory day

2부는 어떻게 이렇게 난해한 이야기를 집중력 있게 다뤘는지 영광스러울 만큼 흥미진진했다. 이 이야기 속 진실과 거짓은 적어도 네 번은 뒤집혔다. 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성직자, 센트럴파크에서 감행한 한 신부의 거짓말, 변화하는 사람들, 진실을 목격한 단 한명의 거짓말쟁이.

거듭되는 반전에 관객들은 다소 혼란스럽다. 진실이 존재하는지, 자신은 진실을 믿는 쪽에 속하는지, 믿지 못하는 쪽에 속하는지 답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보았지만 그건 직접 본 것이 아니고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통해 혹은 상상 속에서 보았기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답은 애초부터 나와 있다. ‘믿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되레 신부는 묻는다. “제가 그 진실로 뭘 해야 되죠?”
하지만 인간에게는 진정한 ‘진실’ 따위란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 당신은 무엇을 믿고 싶은가?

이 작품의 구조는 엇갈리기도, 마주치기도, 엉키기도, 풀리기도 한다. 얼핏 보면 질서 없이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직선과 수직을 오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서 불안하고 날 선 느낌을 받았다. 이 날카로운 동선은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다.

이 작품은 진지함과 복잡함이 정교하게 뭉쳐진 것이 매우 매력적이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력은 박수를 아니 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혼이 들어갔다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던 열정적인 그들의 눈빛은 잊기 어려우리만큼 인상적이었다.

1부와 2부의 합일점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엔 수없이 반복되는 ‘진실’이란 단어가 관객들은 다소 어지럽게 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진실’에 대한 존재를 파악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본다.



김유리 전문기자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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