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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재즈로 노래하라…….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관능적인 무대, 뮤지컬 ‘시카고’

 

1920년대 격동의 미국, 그 가운데서도 재즈와 갱 문화가 유독 발달하였던 도시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시카고’가 오는 8월 3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1975년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Walter Bobbie)와 안무가 앤 레인킹(Ann Reinking)에 의해 리바이벌되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뮤지컬 ‘시카고’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2008년 한국에서도 그 열풍이 예상되는 공연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뮤지컬 스타 최정원, 남경주와 가수 옥주현이 참여해 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살인에게 키치를 고함
내연 남 ‘프레디’가 이별을 고하자 주인공 ‘록시’는 별다른 말 없이 그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프레디’는 ‘록시’가 뿌리는 깔끔한 ‘빵’ 소리 두 번과 함께 피 한 방울 튀기지 않은 채 죽고 말았다. ‘록시’ 말고도 ‘벨마’를 비롯한 교도소 여 죄수들의 사연 역시 너무도 간단하다. 남편이 바람을 피길래 ‘빵’, 때리길래 ‘빵’, 심지어 풍선 껌 부는 모습이 미워서 ‘빵’이다.

뮤지컬 ‘시카고’는 이렇게 과장된 블랙코미디를 이용해 1920년의 시카고를 노래한다. 신사와 품위는 사라지고 창녀와 갱, 마피아의 검은 돈만 판치던 그 시절의 시카고를 말이다. 뮤지컬 ‘시카고’에서는 충격적인 살인을 저지를수록 기자들이 그 살인범에게 흥미를 느꼈고, 당대 최고의 변호사 ‘빌리’는 그런 살인범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배심원들의 동정표를 샀다. 관객들은 5000달러만 있으면 유죄, 무죄를 묻지 않고 사건을 맡는 ‘빌리’에게서 황금만능주의를 읽고, 그런 ‘빌리’의 입 발림에 넘어가 살인범을 동정하기에 이르는 배심원들에게서 진실보다는 포장을 중시하는 외형주의를 읽는다.

‘록시’가 ‘프레디’를 죽인 뒤 무죄판결을 받기까지의 이야기는 꽤나 우습다. 그녀를 무죄로 만들기 위한 ‘빌리’의 거짓말도 우습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세상 사람들도 다 우습다. 이렇게 뮤지컬 ‘시카고’는 살인이라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가볍게 가지고 놀며 그것을 한편의 코미디로 만들어버린다. 그사이 관객들은 ‘프레디’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충격을 지우고 되려 살인범 ‘록시’를 응원하게 된다. 귀여운 악녀의 무죄 판결을 기도하며 그녀의 성공을 빌게 되는 것이다.

뮤지컬 ‘시카고’는 누구에게나 충격으로 다가올 살인 이라는 소재를 어느덧 부제로 밀어내고 어느 뒷골목 여성의 스타 성공기를 중심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 어처구니 없는 농락이 뮤지컬 ‘시카고’ 안에서는 가능했다. 도덕관념이 황금만능주의 안에 파묻힌 1920년의 시카고였기 때문이다.

- 어제를 지우고 오늘을 채우는 ‘속보(速報)’
뮤지컬 ‘시카고’의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한다. 내연 남을 쏴 죽였던 ‘록시’는 단번에 기자들의 관심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호사 ‘빌리’의 포장과 기자들의 북돋움으로 시카고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의 스타가 ‘록시’라고 해서 내일의 스타도 ‘록시’라는 법은 없다. 내일은 더 잔인한 사건을 저지르고 세상을 놀라게 할 그녀가 나타날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더 빨리 세상이 돌아가길 원하는 듯하고 그 요구에 맞춰 기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낸다.

더 맵고, 짠 맛을 찾는 혀에서 시작해 더 웃긴 것, 슬픈 것을 찾아내는 우리들의 뇌에 이르기 까지, 더 잔인한 살인 사건을 원하는 시카고의 기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어제의 유머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어제의 소식은 뚜껑을 열어버린 콜라처럼 밋밋하게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매일 매일, 한 주 한 주의 이슈는 바뀌고, 전보다 더 자극적인 이슈들이 나의 뇌를 채우는 세상, 우리는 점점 더 못 기다리고, 더 강렬한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기에 뮤지컬 ‘시카고’의 풍자가 씁쓸하면서도 우습다.

- 재즈 음에 매달린 흑 빛의 칼라

검다. ‘시카고’의 무대는 검다. 그리고 반짝인다. 사방이 검게 칠해진 무대 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배우들의 반짝이는 옷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의상도 대부분 검다. 검은 색도 화려할 수 있다는 것을 뮤지컬 ‘시카고’의 무대는 보여주었다. 이렇게 뮤지컬 ‘시카고’가 주는 블랙 색조의 화려한 인상은 농도 짙은 재즈 음, 바닥을 치는 배우들의 깊은 목소리와 함께 환상의 호흡을 이룬다.

재즈의 어원은 야비하고 외설스러운 뜻을 지닌 영국의 고어(古語) 재즈(jazz)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 19세기부터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사용한 성행위(性行爲) 등의 성적 의미를 뜻하는 재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 드럼 연주자 찰스의 이름이 Charles → chas → Jass → Jazz로 전환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재즈’가 결코 품격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연해지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뮤지컬 ‘시카고’의 넘버들은 재즈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살인과 욕망, 부패와 폭력, 착취와 간통, 그리고 배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말이다.

뮤지컬 ‘시카고’의 오케스트라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음을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 냄새 나고 황량할법한 시카고의 비 오는 밤거리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검은 무대 위에서 요란스럽게 춤 추는 배우들의 화려함을 보며 관객들은 뮤지컬 ‘시카고’가 말하는 부조리함을 눈치챈다. 반짝반짝 빛나는 ‘록시’, ‘벨마’, 그리고 모든 이들의 모순처럼 어두운 인생을…….

뮤지컬 ‘시카고’는 오는 8월 3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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