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크라잉게임crying game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애정을 요구하는 걸 말합니다. 운다는 것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소리 내 엉엉 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어떤 상처를 받고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우는 거지요. 마음속으로 우는 거요. 마음속으로 운다는 것도 우리에게 애정을 요구하는 겁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우는 것은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침(박도연). 우리는 그 아침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동작 그만이지요. 우리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온 우주와 합심하여 그 작은 소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듬뿍 애정을 주어야 합니다. 그 작은 소녀는 우주 전체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가족 뮤지컬 「소리도둑」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바치는 헌정작품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인 너희들을 사랑하는지 알려주겠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네가 고통스러워서 마음의 문을 닫고 울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말이야. 너를 꼭 껴안아줄 거야. 그리고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줄게. 우리는 노래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잘 알아. 가장 고운 목소리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만 골라 불러줄게. 어쩌면 우리가 가끔 음정박자 틀리고 노래 선곡 잘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 노래에도 너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가득 들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리고 너도 우리의 노래를 듣고 마음의 문을 열어주렴. 우리는 네가 어서 마음속으로 우는 것을 멈추기를 바란다. 가족 뮤지컬 「소리도둑」에는 바로 그런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을 당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아침이에게 노래로 말 걸기!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요? 다들 한 가지씩 떠올려 보셨나요? 슬픈 일을 떠올려보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들 중 하나를 말해볼게요. 그건 바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속수무책 지켜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마음을 갈가리 찢고 영혼을 산산이 부숴버립니다. 그리고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고통과 슬픔은 더 나아가 엄청난 죄책감에 빠져들게 하죠. 어린 아침이는 바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바로 자기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빠가 공연을 하던 중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죽는 걸 보고 말았으니까요. 아침이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못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 죄책감은 소리도둑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 괴물에게 벌을 받아 소리들을 빼앗기고 말죠. 핵심은 소리도둑이 아침이의 소리들을 빼앗은 게 아니라 아침이가 소리도둑에게 빼앗으라고 한 겁니다. 다시 말해 아침이는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그에 상응하는 육체적 고통을 스스로에게 준 거지요. 소리도둑이라는 가상 악당을 통해서요. 그건 정말 큰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걱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 아침이와 아침이 엄마 인경(최정원)은 슬픔과 고통으로 엉망진창이 된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런 그 두 사람을 맞이해준 건 바로 바보처럼 착하기만 한 고향 사람들입니다. 인경을 짝사랑했던 동네 이장 지광, 쌍둥이 자매,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순찰을 도는 노파, 은둔자 괴팍한 의사 선생 등. 특히 그중에서도 작곡가 유준(남경주)과 말더듬이 바보 차린(라준)은 금방 아침이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끼리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지는 것처럼요.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그 두 사람을 환영해준 건 또 있습니다. 바로 고향 마을의 풍경이지요. 마치 두 팔을 벌려 마을을 껴안고 있는 듯 둥근 산봉우리.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는 것처럼 동네를 포근하게 감싸며 품고 있습니다. 그 산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나무들, 마음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놓는 이름 모를 꽃들, 밤하늘을 장식하며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축복처럼 쏟아지던 반딧불이. 뭐, 처음에는 모두들 아닌 척합니다. 하지만 곧 들통이 나죠. 다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모든 자연이, 아니 모든 우주가 그 한 아이 아침이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나뭇잎 하나, 바람 한 줄기, 별빛 하나 모두 아침이를 보고 있습니다. 사실 아침이를 세상의 한가운데에 두고 동네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 서 있는 구조입니다. 마치 껴안아주듯이요.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 아침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이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다같이 모여 뮤지컬을 공연합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한 아이에게 마을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다는 거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더욱이 실패한 뮤지컬 작곡가 유준이나 말더듬이 착한 바보 차린은 아침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각자의 사연이나 인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아침이를 지키는 거지요. 그들은 아침이의 수호천사들 같아요. 그들의 온통 관심은 아침이가 말하는 데 집중돼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아침이의 닫힌 마음을 열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의 인생도 값이 있어지고 가치 있어집니다. 더 나아가 죄책감으로 병원을 나오지 않고 스스로를 감금시키는 형벌을 가했던 소아과 최 원장이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 우리는 교만하게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주는 경우가 더 많지요. 이번 기회에 한 번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요 사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달이 기우는 소리, 꽃이 피어나는 소리, 지렁이가 기어가는 소리 등. 그건 서로 소리를 듣는 주파수가 달라서이기도 하죠. 인간은 너무 큰소리도 너무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모든 소리들이 다 존재하고 있죠. 그럴 땐 어떡하면 좋을까요? 그럴 땐 눈을 감고 마음의 귀를 종긋 세우면 됩니다. 마음을 열고 상상력을 발휘해가면서 마음의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러면 들릴 거예요. 햇빛이 들려주는 이야기, 달이 들려주는 이야기, 반딧불이 전하는 이야기. 뮤지컬 「소리도둑」은 바로 우리에게 아주 작은 소리들을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 작은 소리를 놓치지 말라고요. 그 작은 소리가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소리라고요. 그래서 그 소리를 듣는 것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작은 순간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죠.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꼭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요. 뮤지컬 「소리도둑」은 1998년 상영된 호주 영화 「에이미Amy」를 그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작 당시부터 공연계의 막강 크리에이터들이 뭉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1회 뮤지컬어워즈에서 연출상을 받은 연출가 조광화,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작곡가 김혜성, 뮤지컬 「달고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으로 ‘창작뮤지컬 전문 음악감독’이라 불리는 구소영이 함께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놀랍기만 합니다. 한국 뮤지컬계 1세대 스타이자 명콤비로 불리는 남경주(유준 역)와 최정원(인경 역)이 14번째 공동 출연하는 것으로도 화제가 됐습니다. 그 외 송영창(소아과 최원장 역)과 신예 유망주 라준(바보 치린 역)과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치며 선발됐고요. 아침이 아빠로 출연한 그룹 노바소닉의 보컬 이현섭의 폭발적인 라이브 무대도 죽여주었고요. 아마 그들 모두 착한 가족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열망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연출가 종광화는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배우 남경주는 곧 태어날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다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런 선의善意는 의도한 약점들도 남겼습니다. 스토리는 너무 단선적이었습니다. 1998년에 이미 상영된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니 그 원작의 스토리 분석을 수백 번도 더 했을 거예요. 그러고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는 말이겠지요. 원작을 대폭 개작해서 거의 새로 쓴 거나 다름없이 만들었으면서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관객들은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될지 다 알 수 있었고 100퍼센트 그 예상한 대로 갔습니다. 그래도 혹시(?) 했지만 그런 거는 없었습니다. 근데 그건 너무 뻔한 거 아닌가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수시로 등장하는 아침이 아빠의 환영은 흐름을 끊어놓았습니다. 아침이 아빠만큼이나 소리도둑도 너무 자주 등장했고요. 소리도둑은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몬스터처럼 웃기게 돼버렸습니다. 아침이를 괴롭히는 괴물이 아니라 아침이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모든 약점들은 다 예견하고도 넘어간 것들일 것입니다. 너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강렬해서 그 메시지를 구현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 역시 착한 가족 뮤지컬이 한 편 정도 만들어지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 작품이 가족 뮤지컬이라는 것을 더 강하게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참, 그리고 이 작품의 장점도 빠뜨려서는 안 되겠죠. 가장 큰 장점은 무대디자인, 영상디자인, 조명디자인이 뛰어난 미장센 뮤지컬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뮤지컬과 달리 영상디자인도 따로 놀지 않고 착 달라붙어 효과를 극대화시킵니다.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요. 첫 장면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빠른 영상으로 무대 위를 지나갑니다. 마치 진짜 기차가 지나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치 하늘이 열린 듯 구름 사이로 비쳐들 듯 쏟아져 내리는 환한 빛줄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퍼져가던 안개, 별처럼 빛나며 하늘을 장식하던 러브 마크, 괴물로 변한 빨랫줄에 걸린 빨래, 마을 사람들이 아침이를 찾을 때 마치 레이저 쇼를 하듯 손전등을 가지고 춤추는 빛 효과를 내는 것 등이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의 마무리를 한 음악 이야기도 해야겠지요. 신디사이저, 기타, 베이스, 드럼 , 스트링 등 9인조 라이브 밴드가 선사한 동요처럼 쉬우면서도 서정시처럼 아름답게 가슴을 적시는 음악도 감동을 더했습니다. 180° 변신해서 착한, 너무도 착한 뮤지컬을 만든 전갈의 연출가!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 다들 아시죠?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우화작가 라 퐁 텐이 지은 본성에 대한 그 유명한 이야기요. 옛날 옛날에 전갈이 살았어요. 그 전갈은 강을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를 찾아갔죠.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신을 등에 태우고 강을 좀 건너갔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합니다. 개구리는 전갈이 수영을 하지 못하니 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독침을 찌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부탁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강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전갈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고 맙니다. 결국 전갈과 개구리는 물에 빠져 죽게 되죠. 그때 개구리가 전갈에게 묻습니다. 왜 둘 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 독침으로 찔렀냐고요. 그러자 전갈이 대답합니다. “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전갈이잖아. 그건 내 천성이고.” 이 이야기는 인간의 천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이야기도 틀렸나보네요. 연출을 맡았던 조광화가 그동안 「천사의 발톱」「미친 키스」「남자충동」 등 강렬하고 어두운 이야기만을 해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가히 믿어지지 않는 전갈의 대변신이라고 할 만합니다. 조광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만든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아빠 작품은 무섭다고 말하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아 딸과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나 만들고 싶었고, 그러던 중 음악감독 구소영 씨가 추천한 영화 「에이미」를 모티프로 하여 「소리도둑」을 창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인생을 많이 바꿉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이 비자금으로 구입한 90억 원짜리 그림 한 점이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바로 미국 팝 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이 그린 「행복한 눈물」이지요. 리히텐슈타인은 원래 추상화가였습니다. 추상화라는 게 정말 알쏭달쏭하잖아요. 그런 알쏭달쏭한 그림을 그리던 그가 친근하고 쉬운 대중예술을 순수예술의 반열로 올려놓은 팝아트화가로 변신한 데는 아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무명 화가로 활동하던 1960년대 초반에 대여섯 살 된 아들이 미키마우스 만화책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빠는 절대 이렇게 잘 그릴 수는 없을 거야.” 그는 그 말을 듣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키마우스를 그렸고 그 그림은 곧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그는 이후 만화 이미지를 베껴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고급문화 속 이미지로 끌어올렸고 팝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냈지요. 예술가들의 아이들은 말이에요. 주위 그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고집 센 예술가들의 예술세계를 바꾸게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참 많은 영향을 미치네요. 하하하. PS. 그러나 전갈이 너무 착해지면 전갈이 아니잖아요. 연출가 조광화가 예전에 그토록 천착했던 그 어둡고 강렬했던 작품이 그립네요. 이번 작품은 착한 쪽으로 가도 너무 많이 가서 좀 도덕 교과서 반열입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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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