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를 만나게 될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지 못할까? -알랭 드 보통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저녁 퇴근시간, 성냥갑처럼 생긴 네모반듯한 빌딩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검은 빗방울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도시의 거리는 어느새 인파로 가득 차 출렁거립니다. 인파는 깜박이는 신호등에 따라 휩쓸려갔다 멈추었다를 반복하면서 함께 있기도 스쳐 지나가기도 부딪히기도 하면서 어딘가로 갑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한 채 스쳐 지나가고 마는 거죠. 그 인파 속에 운명의 사랑, 즉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건 너무 뻔해요. 그런데 그럼 결국 우린 평생 마치 눈먼 장님처럼 세상을 방황하면서 애타게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되는 건 아닐까요? 무대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시공간을 종횡무진 여행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랑을 구경해보자고요! 자, 2005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의 게바Geva 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2005년과 2006년 연달아 공연되면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초신성의 출현이라고 격찬을 받았던 뮤지컬 「파이브 코스 러브」가 한국 초연에 이어 앙코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놓치지 말고 하룻밤 동안에 시간과 공간이 다른 5군데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5가지의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을 구경해보자고요. 우리가 세상의 그 모든 사랑을 다 실제로 해볼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요!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상상 속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약간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고요. 무대는 바닥에서 약간 위에 떠 있습니다. 그건 마치 마법의 양탄자 같습니다. 그 무대라는 마법의 양탄자는 퀵체인지를 하듯 쏜살같이 시간과 공간을 종행무진 여행하면서 우리를 5가지 서로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 규칙이 있습니다. 바로 레스토랑에 멈추어 선다는 것! 1코스 2008년 미국 동부 텍사스 바비큐 레스토랑 2코스 1988년 마피아의 대부 돈 까를네오네가 살았던 시대 시실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3코스 1944년 히틀러가 지배하던 독일 함부르크의 하임리히 레스토랑 4코스 1988년 쾌걸 조로가 살았던 멕시코 멕시코시티 멕시칸 레스토랑 5코스 2008년 미국 동부 다이닝 레스토랑 그곳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마치 이국적 향신료가 가득 든 음식처럼 톡 쏘면서 강렬하고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고 중독성 있는 사랑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기발한 상상과 웃음폭탄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까지 모두 매혹적입니다. 단순한 오락성을 뛰어넘어서 전혀 뜻밖의 기상천외하고 가슴 벅찬 즐거움 선사! 1코스 사랑 이야기와 5코스 사랑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면서 하나로 연결되고 나머지 2코스, 3코스, 4코스 사랑 이야기는 그야말로 상상력 넘치는 엉뚱하고 기발하고 낭만적이고 섹시하고 환상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2코스, 3코스, 4코스의 사랑 이야기는 최종적으로는 헛된 기대False Expectation로 끝나면서 마음껏 웃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왠지 씁쓸함을 남기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세계사 속에서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던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는 그 시대적 특징들을 캐리커처로 잡아내 극대화해서 재미를 선사합니다. 근데 그 사랑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그 시대의 주요 아이콘들을 비틀어서 웃기게 만들어버립니다. 그 사랑 이야기들 중에는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화끈하게 섹시한 여자와 가죽바지와 채찍도 등장합니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스펙터클합니다. 또한 1코스의 들이대나 송, 2코스의 오이신, 3코스의 엉덩덩 춤, 4코스의 콕 찍어 송, 5코스의 난데없이 등장한 큐피드까지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중독성 있는 넘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물론 배경이 미국, 이탈리아, 독일, 멕시코이다 보니 각 나라별 음악이 다채롭게 소개되지만 가장 큰 비중은 재즈가 차지합니다. 모던하고 세련된 재즈 선율이 그 어두운 지하극장을 황홀한 음악이 넘치는 궁전으로 바꾸어버립니다. 관객들은 뮤즈의 여신이 쳐놓은 차양 같은 은은하고 얇은 막 너머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라이브 레스토랑 분위기가 한껏 나죠. 음악이 참 좋습니다. 3명의 배우들, 비 오듯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고 춤추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침을 뱉고 망가지다! 정말 놀라운 건 배우가 딱 3명뿐이라는 거죠. 그 3명의 배우가 5코스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그들은 그 작은 무대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고 춤추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침을 뱉고 망가지면서 온몸을 바쳐 열연을 합니다. 다 다른 배역을 하다 보니 분장과 의상도 수시로 바뀌고요. 정말 배우들의 체력이 대단합니다. 아마 공연 다 끝나고 나면 다들 탈진해서 쓰러지지 않았을까요? 배우 박홍주는 남자 하나 잡아서 평생 놀고먹으려는 속물 여자부터 불륜에 빠진 마피아 두목의 아내,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고 즐기는 화끈한 가죽 채찍을 든 그레첸,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는 순진남보다는 멕시칸 마초에게 더 끌리는 로살린드, 깜찍하고 귀여운 레스토랑 아가씨까지를 다 그려냈습니다. 가죽채찍을 든 섹시녀와 깜직 발랄한 소녀까지 천의 얼굴을 담아냈죠. 넘치는 끼와 파워풀한 가창력 등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였습니다. 그 작고 여린 몸에서 활화산처럼 뜨거운 열정이 흘러넘쳤으니까요. 배우 김태한 2대 8 가리마를 하고 뿔테 안경을 쓴 어리바리 순진남에서부터 기름이 좔좔 흐르는 마피아 넘버2 지노, 독일 히틀러 시대의 양성애자 클라우스, 멕시코 조로 시대에 영웅을 꿈꾸는 어설픈 마초 기예르모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추종하는 새끈남 등 다양한 인물들을 맡아 관객을 폭소의 세계로 이끌어갑니다. 공연 중 하이라이트는 관객들을 향해 입 안에서 와작와작 씹어 조각조각 낸 오이 파편을 쏟아낼 때입니다. 맨 앞좌석, 소위 오이석이라 불리는 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오이 파편을 얼굴에 맞고는 모두들 더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면서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나중에는 또 오이 파편 안 주나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배우 심정완 역시 5가지 서로 다른 배역을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면서 무대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독일 장군 역할을 할 때 그 중독성 강한 ‘트’ 발음은 완전 압권이었고요. 또한 맨 마지막 장면에서 날개를 단 큐피드가 돼 사랑의 화살을 쏠 때도 재미있었고요. 공연이 다 끝난 뒤 이어졌던 신났던 커튼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함께 춤추고 박수치고 신나서 함성을 지르고 그랬습니다. 맨 처음에는 우리 시대의 가장 미국적이고 현대적이어서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속물적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씁쓸한 마음이었는데 차츰 배꼽 빠지는 웃음 폭탄을 유발하는 상상력 넘치는 기발하고 재미있고 낭만적이고 독특한 사랑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맨 마지막에는 진실한 사랑으로 귀결되어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환해졌습니다. 사실 바보처럼 외로워하면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순진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이 통렬하게 꼬집히고 조롱당하고 비판당하잖아요.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슬쩍 그래도 순수한 사랑을 찾게 해주고요.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그럼 맨 마지막의 5코스에서 마침내 찾은 그 사랑은 우리가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운명의 사람인 걸까요? 그런 건가요? 글쎄요? 하하하. 마지막도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인용하면서 끝내야겠군요.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건 우리가 성숙한 사랑을 하기보다는 일시적 욕망에 따라 왜곡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는 수 없네요. 한번 끝까지 살아보자고요. 그때쯤에 그 누가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사랑이었는지가 밝혀질 테니까요. 웬만하면 하루라도 빨리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보고요. 그러고 보면 인생은 너무나 흥미진진하죠?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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