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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3,700여 회 공연! 1990년대 대한민국 서울의 밑바닥을 통해 본 우리들의 진짜 자화상

 

프랑스 요리 중에는 삶은 개구리 요리라는 것도 있다고 해요. 그 요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주방장이 손님들 앞에서 즉석으로 한다는 거죠. 뭐, 요리 방법은 간단합니다. 살아 있는 개구리를 물속에 퐁당 넣습니다. 그러고 나서 1분에 0.25도씩 온도를 높여나가는 거죠. 그럼 개구리는 물이 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물속에서 편안하게 잠자다가 삶아져서 결국 맛있는 요리가 돼 식탁에 오르죠.
그런 현상을 삶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변화무지증후군 혹은 비전상실증후군이고도 하고요.
요즘 우리들의 삶이 바로 그 삶은 개구리 같습니다. 도시의 하늘을 아프게 찌르는 초고층 빌딩, 일렬종대로 빼곡하게 서 있는 성냥갑 아파트, 전화 한 통만 하면 즉시 돈을 빌려준다는 대출광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진 백화점과 24시간 편의점 등 모든 것들이 편리하고 근사합니다.
텔레비전 CF만 보면 마치 우리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 것만 같죠. 그런데 조금만 정신 차리고 살펴보면 20대의 태반이 백수이고 비정규직노동자가 넘쳐나고 부익부富益富 빈즉사貧 卽死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됐습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전도사들이 뻑 하면 근거로 제시하는 숫자놀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명실공이 OECD 회원국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고 경제 규모를 따져보면 세계 13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허울에 비해 속사정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10개 도시 중 꼴찌라고 하네요. 또 전 세계 178개국 중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는 102위라는 보고도 나왔고요. 2008년에 발표된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가입 국가 중 1위로 90초마다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요. 왜들 그렇게 자살을 하겠어요. 삶이 너무 비참하니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는 행복하다거나 잘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그저 약에 취한 듯 우리가 여전히 불행하다는 사실들을 잊고 사는 거지요. 또 착각 속에 빠져 있고요. 지금은 88만 원 비정규직 신세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성공해서 상류층에 편입될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환상을 품고서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마는 거지요.
그래서 더더욱 이 시대의 예술은 가끔 개구리가 된 우리를 괴롭히고 아프게 해서 깨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번쩍 뜨고는 “앗, 뜨거!” 소리치면서 그 끓는 물속에서 펄쩍 뛰어나올 수 있도록요!

예술은 바퀴벌레처럼 세상의 밑바닥 가장 음습한 곳을 기어 다니며 입을 맞추어야 한다!
지하철 1호선 노선은 다 아시죠? 서울 강북에서 청량리와 서울역을 지나 인천까지 이어지는 서울에서 가장 돈 없는 서민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노선입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에는 유독 1호선 지하철이 다른 노선을 운행하는 지하철보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도 많이 났습니다.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자본주의의 ‘자’자도 모르는 순박한 영혼을 지닌 옌볜 처녀 선녀가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동안 지하철 1호선 안과 지하철 1호선이 정차하는 서울역과 청량리역 주변에서 만나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만나는 서울 사람들이란 걸인 문디와 땅쇠, 사채업자 빨강바지, 실직가장, 가출소녀, 자해 공갈범, 잡상인, 사이비 전도사, 창녀, 강남 복부인 등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강남 복부인 같은 부도덕한 상류층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입니다. 그들의 맨 얼굴을 통해 위선과 가면을 벗은 대한민국의 진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데 선녀는 왜 서울에 왔냐고요? 옌볜 처녀 선녀는 백두산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눈 약혼자 제비를 찾아 왔습니다. 뭐 보나마나 제비는 분명 온갖 달콤한 말과 사랑의 맹세로 그녀를 꾀어낸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제비를 멋진 신사쯤으로 믿고 그가 한 사랑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고요. 그래서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겠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제비가 건네준 주소와 사진 한 장을 의지해 ‘청량리 588독립군도’로 향한 거죠. 벌써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선녀는 참으로 순진하고 바보 같은 아가씨입니다. 쯧쯧쯧. 사기꾼 제비에게 당한 것도 모르다니요. 그는 여자나 등쳐먹는 나쁜 놈인데요. 그러니 결론은 뻔합니다. 선녀는 자신이 나쁜 놈에게 당했다는 걸 확실히 깨닫고 냉혹한 현실에 상처받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지요. 아니, 어쩌면 더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안 좋은 쪽으로만 예측하지는 말자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게 마련이니까요.
선녀는 마침내 제비가 가르쳐준 588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곳은 사창가. 그녀는 그곳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혼혈인 철수, 늙고 병든 창녀 걸레,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하는 안경, 서울역 광장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곰보 할매를 만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인신매매를 하는 나쁜 사람에게 쫓기기도 하고 늙고 병든 창녀 걸레의 자살미수를 보기도 하고 결국은 그녀의 자살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토록 찾았던 제비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요.
그녀는 어느덧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지녔던 부푼 희망을 다 버려야 할 상황이 되고 맙니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렸고요.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위로를 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늙고 병든 창녀 걸레지요. 그녀는 선녀에게 「울 때마저도 아름다운 너」라는 노래를 불러줍니다. ‘하지만 너의 슬픔은 곧 사라져/그건 내가 약속할 수 있어/니 얼굴에 씌었어/자, 용기를 내 행복해질 수 있다고/왜냐면 넌 너무 예뻐, 울 때조차도’
선녀는 걸레가 역에 들어오는 지하철을 향해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지지만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노래 「가버린 그녀」는 이렇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꿔야 해/행복을 꿈꿔봐 나에게 찾아올 거야/그건 언제라도 바로 오늘 중에도/아주 작게, 아니면 엄청난 기적처럼/꿈이란 소중한 것, 끝도 없는 것/그리고 이뤄지는 것’
사창가 588의 늙고 병든 창녀 걸레를 통해 세상의 비참함을 절망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옌볜 처녀 선녀를 통해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꿈꾸는 희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 걸레와 선녀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저는 예술이란 마치 바퀴벌레처럼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냄새 나고 더럽고 가장 음습한 곳을 기꺼이 기어 다니면서 그곳에 입을 맞추고 그곳을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예술이 조금이라도 현실을 바꾸고 개선하고 타락한 인간을 약간이라도 구원하는 데 책무가 있다고 믿는다면 말입니다.

88만 원 세대이자 이태백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20대가 반드시 꼭 한 번 봐야 할 공연!
1970년대 1980년대에 민중 가수이자 작곡가 작사가로 활약하던 김민기는 1991년 극단 학전을 창단하고 공연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지하철 1호선」「개똥이」「모스키토」「의형제」 등의 뮤지컬과 연극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중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그립스 극단Grips Theater Berlin의 「Linie 1-Musikalische Revue」를 번안한 작품입니다. 그가 독일에 갔을 때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대폭 각색해서 만든 무대에 올린 작품이지요.
원작 내용은 독일이 통일이 되기 전 순박한 동독 소녀가 서독의 로커와 사랑에 빠져 무작정 베를린으로 건너와서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큰 틀만 따왔고 작은 세부 내용들은 다 바뀌어서 거의 새롭게 창작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Volker Ludwig는 “서울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원작보다 더 강하고 정치적이지만 더 시적이고 더 슬프지요. 관객은 웃고 울지만 웃음이 더 많습니다…… 저도 서울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15번 이상 보았습니다만 볼 때마다 다시 매료되고 눈물이 납니다.” 하고 말하면서 개작의 완성도와 작품성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작자 폴거 루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Wirger Heymann은 그 완성도와 작품성에 대한 인정의 의미로 2000년부터 저작권료를 전액 면제해주고 있답니다.
1994년 5월 14일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초연됐을 때만 해도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얻으며 약 15년 동안이나 공연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물론 초연 때부터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과 밑바닥 계층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시선과 녹음 반주 테이프에 맞춰 배우들이 노래 부르던 형태가 주류를 이루던 관행을 깨고 최초로 5인조 록밴드를 등장시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등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기는 했지만요.
「지하철 1호선」은 2000년 1,000회, 2006년 3,000회, 2008년 12월 4,000회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공연을 관람한 관객만 약 70여 명에 이릅니다. 또한 초연 후 약 5년간 시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내용을 새롭게 수정 보완해서 6개의 약간 다른 버전으로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부터는 더 이상의 수정 보완 없이 한 개의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고요. 학전 김민기 대표가 ‘1990년대의 풍속화’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요일을 나누어 영어와 일어 자막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연되고 있는 1998년 버전은 2008년 12월 4,000회를 끝으로 공연을 중단하고 완전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롭게 재창작해서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지금 버전으로는 2008년 12월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는 2008년 3월 12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새 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90년대의 서울을 그린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도 바뀌어야 했지 않나 생각하던 중에 숭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새 버전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21세기 버전은 다문화사회의 외국인 근로자 문제와 달라진 남북관계 등을 담아낼 거예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방인의 눈을 통해 이 시대의 희망과 절망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것과 지하철 1호선을 배경으로 한다는 아이디어는 그대로 두고요.”

공연장에 가보면 1970년대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이 관람을 많이 합니다. 다른 뮤지컬에 비해 관객 연령층이 높은 편입니다. 아마 「아침이슬」「친구」「바다」 등을 부르던 세대들이 옛 향수를 잊지 못하고 공연장을 찾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네들이 작품 내용에 가장 많이 공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2008년입니다. 1994년의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1998년의 IMF 상황으로 바꾸었다고 해도 10년이나 지난 걸요. 청량리에 가도 588 같은 창녀촌은 찾을 수 없답니다. 하지만 사실 그때보다 현실은 더 냉혹해졌고 각박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사실을 훨씬 더 깨닫지 못하게 됐고요.
여전히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주는 메시지는 유효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20대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꼭 한 번 보라고 강추하고 싶습니다. 사실 20대들은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요? 1990년대 대한민국 서울의 자화상을 이렇게 솔직하게 까발려서 보여주는 공연을 다시는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리고 그 1990년대 우리 사회의 밑바닥 군상들을 통해 가짜가 아닌 진짜 우리의 자화상을 보고 느끼고 아파하는 경험이 다시 지금의 현실을 살게 하고 지금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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