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같은 자신을 만난 적이 있는가? 늦은 봄날 나른한 권태 앞에 선 자신을 만난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깊숙이 울음을 건네 본 적이 있는가? 봄과 함께 찾아온 뮤지컬 ‘소리도둑’은 이런 질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살짝 미소 짓고 우리 마음속에 머무른다. 봄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어디 사실 그런가? 하지만 이 작품이 그런 어른들에게 그 손에 잡힐 듯 한 기적을 불러낸다. 마치 자신이 어른이라고 믿고 있는 ‘가짜 어른’들의 손에 쥐어주는 작은 손거울과도 같다. 그렇다! ‘우리’ 창작뮤지컬이다! 뮤지컬 ‘소리도둑’, 중극장 창작뮤지컬이다. 참 반갑다. 덥석 포옹이라도 해주고 싶다. 이 작품은 제작단계서부터 차별성을 두고 작가, 작곡가, 배우, 제작자가 3년여의 기획과정을 거쳐 탄생된 작품이다. 그래서 더 기대했고 그만큼 애착이 간다. 그동안 ‘남자충동’, ‘미친키스’, ‘천사의 발톱’ 등 인간의 어두운 면을 주로 다루었던 조광화 작가는 이 작품으로 그동안의 오해(?)를 벗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더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2008년 초반 한창 이슈가 되었던 무비컬 중 하나이다. 98년 호주에서 만들어진 영화 ‘에이미(Amy)’를 원작으로 하지만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확실히 사실감 깊은 무대 위에서의 표현력은 더욱 깊은 곳까지 와 닿는다. 씬과 씬의 자연스런 연결과 속도조절, 그리고 핵심을 짚어가는 굴곡 있는 진행은 영화와 차이를 보인다. 사실은, ‘머리 큰’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 공교롭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캐릭터는 바로 동네바보인 말더듬이 ‘치린’이다. ‘치린’은 작품의 해설자와도 같다. ‘아침’이와 가장 먼저 친구가 되는 것도, ‘아침’이의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도 ‘치린’이다. 관객은 ‘치린’의 엉뚱함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다. ‘치린’은 혼이 나면서도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닌다. 그렇게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마을 사람들을 자꾸 일으켜 세운다. ‘치린’에게 ‘말더듬이’라는 설정을 넣었지만 그는 ‘말’에 운율과 강약을 넣어 반복해서 말한다. 때문에 ‘치린’의 일상적인 대사가 노래 같다. 그렇게 이 작품의 중요한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치린’은 막 뚜껑을 딴 사이다 같은 느낌이다. 새롭다. 작가의 참신함이 돋보인다. 풀잎 자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아침’이의 질문이다. 이 세상 어느 어른이 그 대답을 바로 하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어른스러움’의 어리석음이 들킨 것 같아 내심 부끄럽다. ‘소리도둑’은 오랜만에 외롭던 감성의 방문을 두드리는 친구 같은 작품이다. 촉촉한 ‘음악’, 눈물 그리고 감동을 부르다 말을 잃은 아이, ‘아침’은 노래로만 대화한다. 이 상황이 정말 ‘뮤지컬’과 딱이다. ‘아침’이에게 말을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노래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건 못하는 사람이건 다 똑같다. ‘아침’ 아빠의 깊고 진한 록음악도, ‘소리도둑’의 웅장하고 리듬감 있는 합창도, ‘아침’이가 듣는 ‘개미 풀잎 걷는 소리’도 그 음색과 화음은 다르지만 한 음(音)의 유니즌(unison. 제창)노래처럼 느껴진다. 그 감동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아침’의 멜로디는 동요에 클래식의 옷을 입은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레가토(legato, 계속되는 음과 음 사이를 끊지 말고 이어서 연주하라는 음악용어)의 느낌이 강하며 심한 도약이 없이 쉽고 간결하지만 쉽게 만들어진 멜로디는 결코 아니다. 아이들이 장기자랑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이 노래를 뽐낸다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겠다. 반면, 아빠의 노래, 유준의 작곡과정, 동네사람들의 합창, 소리도둑의 합창 등에서는 다성음악으로 멜로디가 대칭을 이루며 역동적이고 웅장하게 발전된다. 특히 중극장을 가득 메우는 9인조 라이브밴드의 음향이 톡톡히 제 역할을 다 해 더욱 관객에게 가깝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아빠의 환상 등 대부분 이야기의 전개는 멜로디와 리듬을 타고 객석에 전달된다. 아이들에게 이 내용이 잘 전달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걱정을 하는 사이 객석의 아이들은 이미 극 속에 빠져 있었다. 그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똘망한 객석의 눈들을 보고는 어른들이 더 기뻐한다. 그렇게 무대 위 눈과 입을 통해 흐르는 에너지의 결과가 객석 깊숙이 들어간다. 세밀한 곳에서 보이는 어른과 아이들의 공감대 환상을 품고 있는 무대는 압축되었지만 사실적이다. 동화 속 마을 같은 파스텔 톤의 무대가 화려하지만 포근하다. 호랑할멈 자전거, ‘치린’의 보물상자, 반딧불, 다양한 모양의 리코더 등 각종 아이디어 소품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또한 앙증맞고 귀여운 집, 미용실, 병원 등 장소의 특징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속 마을 같다. 이렇듯 소품과 무대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어린아이의 시선이지만 참 수준이 높다. 어른들의 시선에서 봐도 실망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을 볼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 노래, 배우고 싶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아이, 그 조그만 아이의 머릿속에 전쟁이 한창이다. 그 아이의 침묵사이로도 세상은 흘러갔고 더 작아졌다. 어른들은 ‘아침’의 말 한마디가 간절하지만 사실 그 과정으로 인해 어른들이 치유된다. 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누군가에게 깊은 울음을 건넨다. 그렇게 이 작품은,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네는 그 방법을 객석의 어른들에게 던진다. ‘소리도둑’은 모든 세대를 위한 작품이다. 순수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 이 작품에서 어떤 감성의 노래를 얻어 갔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아침’이의 노래를 듣는 객석을 바라보니 알겠다. 짧지 않은 공연시간동안 한 모습으로 집중한다. 그 아이들이 눈빛이 무척 인상 깊다. 그들이 오늘 밤에 꾸는 꿈엔 반딧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내 노래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 어둔 밤길에 무서워 흥얼거리는 노래야.” ‘아침’이의 노래다. 그렇게 거창하지 않는 그 노래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공평하게 관객들의 귓속으로, 눈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간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어른과 아이는 공감의 힘을 얻는다. 공정임 kong24@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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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